728x90
이쯤에서 쉬어 가자
유리창에 기대어 니르바나를 꿈꾸는 가여운 사람들아
가을이다.
마음의 등불 하나 켜고 서성이는 가을 저녁
한라산 아흔아홉골 금봉곡 하류
한 골짜기가 모자라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는 아흔아홉골
가을이 흘러 내려온 자리
그곳엔 천왕사
산내음이 향내음
그 속에서 너나없이 서성인다.
1955년 비룡스님에 의해 창건된 천왕사
사람은 가고
천왕사의 옛모습도 꿈엔듯 아련하다.
산색이라 하여 어찌 옛과 같을까
다만 그렇게 변해 가는 속에 스스로가 있다.
삼성각 뜰에도 가을
어디에나 쌓이는 작은 소망들
한 닢의 무게
가을의 무게
버리면 가볍다
적송의 향기도 가볍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누구는 색에 취하고 누구는 향기에 취하고
그렇게 가볍게 흘러 흘러 닿은
한라산 북사면 도근천의 하류
그 물줄기를 따라왔던 비룡 스님의 부도
살아 생전 모습이 가볍게 가물거린다.
시간이 가물거린다.
가을이다.
가물가물 가벼워져야 할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