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에서 난을 만났다.
아래로부터 하나씩 떨구며 올라와 이제 두 송이 꽃이 남았다.
마주선 또다른 난도 두 송이의 시간을 남기고 서 있다.
성산읍 수산리 왕메 오름
송당에서 손자봉을 지나 수산리 방향으로 가다가
수산리 삼거리에서 좌회전(종달 방향)하여 400여 미터를 간 후
왼쪽 농로로 들어서서 800여 미터 정도를 더 달리다가
오씨 공동묘지 앞에서 멈추어 잡풀 사이로 간신히 이어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용눈이오름을 지나 왕메 오름만 쳐다보며 몇 차례 길을 잃었는데
막상 정상에 오르는 시간은 20여분이 채 걸리지 않아 섭섭했다.
인적이 드물어 산정조차 묻힌 곳.
왕메오름 혹은 대왕산이라는 이 오름의 이름은
산과 그 주변 지형이 王자의 형태를 닮아서 붙여진 것이라는데
잡목과 수풀로 우거져 굼부리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원스레 펼쳐진 풍경 속에서
다랑쉬의 고운 능선은 능히 시선을 붙들고도 남음이 있다.
가을 바람에 조금씩 몸을 눕히고 있을
용눈이의 부드러운 풀잎들도 여기서 더욱 가깝다.
하늘 위로는 손님처럼 다가오는 구름
그리고 그 아래로는 오름과 곶자왈
오름에서 한 없이 호흡이 가라앉는 것은
저 푸르디 푸른 곶자왈이 있어서일텐데
오름으로 오르는 길을 내려고
곶자왈을 뭉텅뭉텅 잘라내는 현실이 그저 아쉬울 뿐.
이곳 왕메오름 남쪽의 드넓은 곶자왈 수산평은
탐라국이 원나라의 식민지가 되면서 원나라 목마장의 시초가 되었던 지역이다.
말과 소, 낙타, 나귀, 양 등이 이곳에서 방목되었고
이후 이러한 형태의 목장이 탐라의 전역으로 확장되어갔다.
고개를 돌리면 그리운 성산포가 곁으로 다가온다.
소처럼 길게 누운 우도의 모습도 선명하다.
산지기 없는 산정의 산불감시초소를 엿본다.
초소의 벽에 새겨진 산지기의 좌우명.
문장부호가 마침표도 아니고 느낌표도 아닌 물음표이다.
좁은 초소 안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천정을 올려다보며 좌우명을 새기고
한참 있다가
점안하듯 물음표를 찍는 모습이 상상된다.
ㅠㅠ
왕메오름을 빠져나와
세화 오일장의 막걸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쟁기로 밭을 가는 농부를 만났다.
쟁기를 갈아본 적은 없지만
옛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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