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9일 아침
- 차디차서 오히려 정신은 맑다.
햇살이 나무에 박혀 군데군데 얼었다.
통도사의 극락암.
극락영지 위로 난 홍교 위에 올라선다.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느냐."
경봉스님께서는 극락암을 찾은 이들에게 이렇게 묻곤 하셨다는데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이 홍교 위에서 얼어죽은 영혼은 없나 두리번거려진다.
고려 충혜왕 2년 1332년 창건되고
조선 영조 34년 1758년 중건된 통도사 극락암
천강에 드리운 달빛 그림자
하 고와도
법안의 그 빛만 할까만
이곳에서는 정법안장과 영월루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참선 삼매의 뜰로 다가간다.
잎사귀를 떨군 감나무처럼
소리를 죽이고 죽여도 내 발자국 소리는 우뢰처럼 크게만 들린다.
극락암 세 개의 문 가운데 하나인 여여문.
현판은 경봉스님의 친필로
여시문으로 읽는 이도 있다는데
글귀를 알아 깨달을 수만 있다만 기어이 알아내고야 말겠건만
이처럼 여여하게 오고가는 일이 더 어려운 일.
극락암.
1953년부터 경봉 스님께서 기거하면서
수많은 수행 납자들이 몰려들자
9동 104칸의 작지 않은 도량으로 발전했다.
정수보각
이미 삼매에 든 스님들은
아침 햇살이 문고리를 잡아 당겨야
좌복에서 일어날 듯하다.
현판은 경봉 스님의 친필이어서
님의 향기를 느끼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을 붙들기도 한다.
극락암이라는 현판 아래로
무량수각이라는 현판이 다시 붙어 있다.
조용히 법당 안으로 들어가 참배한다.
경봉스님도 계시다.
"법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가운데 있고
종사가 법좌에 오르기 전에 법문이 있고
법문을 듣는 사람이 자리에 앉기 전에 있고
종사가 무엇을 말하여 하는가 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있는 것이다."
미소할 뿐
얼굴은 얼어도 마음은 미소한다.
아란야.
고요하여 깨달음을 이루기 좋은 곳.
1969년 경봉 스님께서 특별 정진 도량으로 세운 곳으로
이곳 극락암에서 5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수행 공간인데
아란야에 방부를 들이면 최소 3년은 수행에 정진해야 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돌에 음각된 이것은 아마도 경봉 스님께서 세우신 아란야 도량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수세전
호쾌대활
추사 김정희의 호쾌하고 대활한 글씨체를 여기서 만난다.
삼소굴
경봉스님께서 기거하시던 곳으로
어느날 참선 도중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달아 오도송을 남기기도 하였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발화 꽃빛이 온누리에 흐르누나.
1953년 극락호국선원(極樂護國禪院)의 조실(祖室)로 추대되어 입적하던 날까지
이곳에서 법을 구하러 찾아오는 불자들을 지도하셨는데
90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시자(侍者)의 부축을 받으며 법좌에 올라 설법하셨다.
그리고 1982년 7월 17일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셨다.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연꽃같은 영축산 봉우리가 빙 둘러싼 가운데
연화도의 중앙 혈지에 들어선 지형이라 하는데
문외한에게는 선승의 향기가 먼저 다가오는 극락암.
혹시나 참선 수행 하는데 방해가 될까 하여 자세히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무량수전 옆에서 이곳이 극락호국선원으로 불리는 자취를 발견하였다.
대황제전하 만만세
순비저하 수제년
영친왕저하 수제년
황태자전하 천천세
이 극락암 청동반자는
조선 왕실에서 극락암에 내린 것으로
태극 원문에 당좌의 좌우에 왕실의 수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이 청동반자를 회수해 없애려 하자
극락암에서는 1938년 5월 쇠북을 암자 뒤의 대나무 숲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1945년 해방된 다음날인 8월 16일 파내어 3번을 크게 쳐서
해방의 기쁨을 만천하에 울렸다.
“대문 밖을 나서면 돌도 많고 물도 많으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도 말고 물에 미끄러져 옷도 버리지 말고 잘들 가라"
경봉스님께서 극락암을 내려가는 이들에게 늘 당부하셨던 말씀이다.
세간에는 돌도 많고 물도 많다.
쇠북을 울려
만천하의 평안함을 고하지는 못할지라도
스승의 향기를 잊지 말고 살아지기를 바라며
둥둥둥 마음의 쇠북을 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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