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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경남 사천 다솔사

by 산드륵 2011.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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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0일 낮

 

하산 중이다.

그래도 세상은 첩첩산중

 

경남 사천시 곤명면 봉명산 다솔사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4년인 503년에 연기조사에 의해 영악사(靈嶽寺)로 초창되어

선덕여왕 5년인 636년에 건물 2동을 더 지은 뒤 다솔사로 사명을 바꿨다.

문무왕 16년인 676년에 다시 의상대사에 의해 영봉사(靈鳳寺)로 바뀌었으나

신라 말기에 도선 국사에 의해 중수되면서 다솔사로 불리게 되었다.

 

108 계단 위로 대양루가 먼저 보인다.

일주문이 없이 108 계단을 오르면 곧장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대양루는 1748 영조 24년에 지어진 건물로

설법을 하고 불기를 보관하던 곳

정면 5칸 측면 4칸 정면 기둥의 간격이 3미터가 넘는 커다란 건물이지만

건물 가운데 대들보 하나로 지붕의 하중을 견디고 있다.

 

구석에 오래된 괘가 보인다.

괘에 일단 반갑다.

그리고 가정집의 일반 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긴 길이에 감탄한다.

 

기와로 꽃을 새겼다.

흙을 바르고 기와를 끼워넣곤 했을 옛 사람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다솔사 적멸보궁

 

1979년 대웅전을 수리하던 중

후불탱화 속에서 108과의 부처님 사리가 발견되자

대웅전을 개수하여 만들었다.

양식은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따른 것이다.

 

적멸보궁 뒤로는 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5000여 평 규모의 녹차밭이 자리잡고 있다.

1960년 다솔사 주지 효당 최범술 스님에 의해

'반야로'라는 명차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16나한을 모신 다솔사 응진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초창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이후1690 수종 6년 죽마대사가 중건하였고

1930년 한용운 선생이 다시 중수한 건물이다.

응진전 옆의 극락전 역시 같은 시기에 중수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솔사가 거느린 숱한 이야기 속에서

머리 잃은 거북은 말없이 누워있다.

 

안심료

만해 한용운 선생과 김동리 선생이 머물던 곳

 

다솔사는 

일제강점기에 만해를 영수로 효당, 김범부 등이 조직한 구국운동단체인 만당의 아지트였고,

만해의 회갑 기념회가 열리기도 한 곳이다.

만해 한용운의 독립선언서 초안도 이곳에서 작성되었다.

 

김동리 선생 역시 이곳 안심료에서

등신불을 집필했다.

 

도선국사가

수많은 인재를 거느릴 곳으로 점지한 곳으로

한용운, 김동리 이외에도 효당 최범술, 김범부, 김법린 등 걸출한 인물들이

이곳에 정을 들였다.

 

하산 길이 촉박하여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다시 찾아 편안히 걷고 싶은 그런 곳으로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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