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8일 아침 6시 20분
해발 1186m의 무등산
그 무등산에 안긴 규봉암으로 가는 길은
이곳 원효사 지구 이외에도 증심사 지구와 화순에서 출발하는 길이 있다.
처음 생각에는
이 표지판의 왼쪽에 자리한 무등산장으로 해서 꼬막재를 거쳐 규봉암에 오를 생각이었지만
'무등산 옛길'이라 새겨진 오른쪽 길로 무심히 접어들면서
생각보다 산행시간이 많이 길어지게 되었다.
무등산 옛길을 타고 가다가 만난
금곡동 제철 유적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무기를 만들던 장소라 한다.
제철에 필요한 여러 시설이 발굴되었다.
금곡동 제철 유적지에서 좀더 올라간 곳에 위치한 주검동 유적지
'만력 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 주검동
1593년(선조 26년)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김덕령 장군을 기리기 위해
김덕령 장군이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받은 1788년 이후에 새겨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규봉암을 오르던 옛 선사들과
이름없이 죽어간 수많은 의병들에 이르기까지
목을 축이고 얼굴을 씻던 원효계곡
발길은 바람에 밀리고
얼굴은 안개에 젖으며
그렇게 옛길을 걸었다.
2시간여를 그렇게 걸었다.
하늘이 트여 오길래 정상에 다 와 가는구나 생각했는데
산쪽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의아심이 깊어갈쯤 숲을 빠져나와서야 알았다.
지금까지 걸은 길이
무등산장-꼬막재-규봉암 길이 아니라
원효계곡을 타고 서석재 바로 밑의 군대 삼거리쪽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군대 삼거리 앞으로 군용 짚차가 지나간다.
적잖이 당황한다.
산 정상에서 굉음소리를 내며 달리던 군용 짚차의 영상은
다행히 안개가 씻어 주었다.
깊고 깊은 안개바다 속을 뚫고 장불재를 찾았다.
이곳을 넘어야 규봉암이다.
장불재를 건너면 행정구역이 화순으로 바뀐다.
어느 옛날 광주 원님이 너무 배가 고파
팥죽 한 사발에 이곳을 화순 원님에게 팔아버려서 그리 되었다 한다.
원님이 배고팠으면 민초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마는.
장불재에서 내려가는 길에서는
화순 이서면 영평리 장복동 마을에서 이곳으로 올라오는 길도 보이지만
숲에 가려져 쉽게 찾을 수 없다.
피안교.
드디어 차안에서 피안을 찾았다.
바윗길이 시작된다.
장불재를 기점으로 규봉암까지는
안개 대신 소나기.
바윗길에 시큰거리는 발목을 신경쓰느라
잡념은 저만치 내려놓았다.
무등의 줄기
긴숨을 들이쉬지 않아도
산은 이미 마음 깊이 들어와 박혔다.
마음에 산이 드니
드디어 규봉암이 절로 다가선다.
무등산 규봉암
신라의 도선국사 혹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함께 있다.
해발 950m에 자리한 규봉암 삼존불
관음전
천수천안으로 살피시는 관세음보살 앞에
규봉암까지 이고 온 내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는다.
내려놓았으니 뒤돌아보지 않는다.
바위에 이름을 새긴 이들
혹은 그 너머 망망한 허공에 이름을 새긴 이들까지
모두 한 줄기 바람 값이다.
규봉암 너럭바위 위에 앉아서 바람소리 듣다가
신선대 방향으로 하산길을 택했다.
처음 오르고자 했던 꼬막재-규봉암-장불재 코스를 거꾸로 걷게 되는 맛이 좋다.
신선대.
신선은 산에 붙들렸으나
나는 이제 하산한다.
산에 숨으려만 산에 숨을 수 있고
세간에 숨으려면 세간에 숨을 수 있는 가벼운 자취를
무등산 규봉암 길에서 만나고 간다.
중국의 뉴에이지 뮤지션 Wang Sheng Di 수정금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