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8일 오후
운문암에 다달았다.
뜰은 고요한데
그 앞에 선 나는
오랜 산행에 발목을 절뚝이며 온몸으로 땀을 비오듯 쏟아내고 있다.
그 뜰은 고요한데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나는
보이지 않는 문고리를 잡고 서 있다. 문도 없는데 문고리를 잡고 위태롭게 서 있다.
구름이 흩어지면 저절로 열리는 그 문
허공에 그 이름을 새길 곳은 정말 없는데
운문이라 부르고 또 열려 한다.
아득한 아주 아득한
운문암을 올려다보다가
그 문고리를 탁 놓아 버렸다.
때가 되면
오를 이는 오르고
내릴 이는 내리게 될 운문의 길
문은 있으나
닫힌 적이 없으니 열릴 일도 없는 곳
그래, 모든 것이 꿈만 같구나.
운문암에서 내려와 백양사에 들어섰다.
하염없이
흐르는 물만 바라본다.
물 속의 바윗돌도
지긋이 눈을 감고 참선 수행 중이다.
광주 무등산 규봉암까지 6시간 넘게 산행하고
곧바로 달려온 장성의 백양사
그 백양사마저 축지법으로 스쳐 달려간 운문암에서는 묵언하고
백양사 도량에 들어서서야 눈을 들어 세상을 본다.
이뭣고!
고불총림 백양사 대웅전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이들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다.
백양사에서는 거닐고 놀기만 하여도 된다는 말씀이 언뜻 들린다.
백양사 뜰 앞을 거닐어 본다.
보리수 그늘 아래서 거닐어 본다.
운문암이 깃든 백암산 상왕봉이 등 뒤에 있다.
백양사에서 거닐 때는 상왕봉을 바라봐야 하나.
이뭣고를 잡아야 하나.
글쎄,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북쪽엔 마하연, 남쪽엔 운문암
그래, 어디에 앉을지는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조금전에 다녀온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상왕봉의 운문암이 어디쯤인가 살피다가
천천히 숨을 고르며 하산길을 찾는다.
땀범벅으로 엉긴 머리칼을 고르게 단장하고
잠시 물가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는 길에 만원에 20개라 하여 기쁘게 산 복숭아는 맛이 없었지만
물냄새도 좋고 아픈 곳도 없이 좋고 좋다.
연못가에 앉아 그믐의 달빛이라도 보고 싶은데
설렁설렁 쉬어가는 법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다시 지도를 펴고 돋보기를 들이댄다.
발목이 부러져 스스로 고꾸라질 때까지 걷고 또 걸을 심산인가 보다.
다리가 후덜덜 거리는데 웃음이 난다. 자꾸 속으로 웃음이 난다.
웃음 끝에 절로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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