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포의 터진목
1940년대 초까지도
물때에 따라 육지길이 열리고 닫혔던 이곳 터진목.
광치기여 앞 모래사장 이 일대는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성산면, 구좌면, 남원면의 주민들이
인근 지서에 끌려갔다가, 혹은 군인들에게 잡혔다가
이승만의 사병이었던 서북청년단 특별중대에 넘겨진 후
감자공장 창고에 수감되어 고문 당하다가 총살됐던 학살터.
풍경은 무심히 고와
마음이 더 저려오는 이곳.
이방인이 타전하는 성산포의 소식
그해, 이 터진목 해안 모래밭 앞 절 소리는 이른 봄부터 그렇게 거칠도록 울더이다.
그해 가을, 이 터진목 앞바르 바닷가 노을은 파랗게 질려 있고
순하디 순한 숨비기나무 잎새들마저 초가을 바닷바람 사이에서 덜덜덜 떨고,
거칠게 밀려오던 파도 또한 덩달아 숨죽이던 그 때의 가을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가을이더이까.
저희는 들었습니다.
콩 볶듯 볶아대던 구구식 장총소리를,
미친개의 눈빛처럼 시퍼렇게 지나가던 징박힌 군화 소리를, 그리고 보았습니다.
아닙니다.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당신의 형과 아우와 당신의 삼촌과 조카와 당신의 아들과 딸과 손자와 손녀와
그리고 함께 있던 이웃들이
저 건너 조개밭에 밀려와 썪어가던 멸치 떼처럼 널부러진채 죽어가는 것을,
그나마 가느다란 향줄기 지펴올리는 일이 고작이던 우리
이,
섬의 우수.
건드리면 터질듯
항상 아슬아슬하다.
그 해안을 파 제끼는 소리마저
구구식 장총 소리처럼 두렵다.
터진목의 봄길
유족조차 없어
이곳에 내버려졌다가
바다로 쓸려간 시신을 품은 성산포
그 바다
그 바다에
다시 4.3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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