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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삼형제오름

by 산드륵 2013.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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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천백고지

삼형제오름 동녘 기슭을 지나는 이들을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는

산사나이 고상돈


 

산에 영혼을 묻은 사나이에게

헌화하는 한라의 붉은 꽃이 눈에 시리다.


 

이스렁과 불래오름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다.

삼형제오름 중 맏이인 큰오름 정상에 서 있는 국군통신소에서부터

둘째인 샛오름 기슭까지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지다가 계곡을 만나 멈추게 된다.


 

노로오름


 

붉은오름

 


꽃들의 안부를 물으며 걷는 길.

그들은 내게 결코 평안한지 안부를 물어봐 주지는 않았지만

나의 걸음은 어느새 담담한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가파른 큰오름의 내리막길이 끝날 즈음

샛오름이 다가선다.


 

한라의 오름들을 파도처럼 출렁이게 하는 강풍 속에서도

무심한 풀솜대


 

바람이 분다.

꽃잎이 흔들린다.

바람이 갔다.

꽃잎이 여전히 흔들거린다.

그 앞에 망연히 서 있는 제자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스승이 말한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나뭇잎도 아닌 네 마음이다.


 

나무들이 출렁인다.

산바람이 세고 세다.


 

바람의 결을 따라 흔들리며

산사람들이 내어준 길을 따라 걷는다.


 

꽃을 만나면 잠시 쉬어간다.

산에서 하는 일은 이뿐이다.


 

계곡을 만나면 쉬어간다.


 

물가에 쭈그려 앉아 흩뿌려진 꽃들을 바라본다.

산에서 하는 일은 이뿐이다.

그럼에도 어제의 슬픔을 이미 잊었다.


 

천아오름, 붉은오름, 어승생이 보인다.

정상에 다가왔다는 뜻이다.


 

온 길을 돌아보니

구름들이 쓸려간 사이로 한라의 영봉이 뚜렷하다.

국군통신소가 큰오름 머리에 박혀있다.


 

진달래밭도 보인다.


 

가까이 들여다본다.

저곳에 가고 싶다.

마음뿐이다.

 


바람이 넘실대는

초록의 숲 저 너머에는 녹하지악


 

돌오름


 

한대오름


 

그렇게 멀리 바라보다가

발밑으로 고개를 떨구면

뭉텅뭉텅 떨궈진 낙화들


 

때를 놓쳐

붉은 얼굴인지, 흰 얼굴인지 모를 산작약

 

바람이 지나간 자리인지

벌레가 쏠고간 자리인지

상처를 입은 줄딸기꽃.

 

이들이 있어 

산사나이는 산이 좋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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