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머물다 갔느냐에 따라
그곳의 향기도 달라진다.
청화 스님께서 머물던 자성원에서
늘상 하던 생각.
그러나
오늘은 그 생각 위에 먼지가 묻어 있었음을 알았다.
그 향기조차 내가 지어낸 티끌임을 알았다.
청화스님!
가신 뒤의 법문이 더 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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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월 23일 초파일에 있었던 청화스님의 법문이다.
안심입명을 하려고 생각할 때는 마땅히 일체 존재를 관통해 하나의 불성으로 보아야 하고
또한 불성이 되기 위해서 거기 걸맞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합리적인 방법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석가모니는 성을 넘어서 왕자의 자리를 그만두고 출가를 했고
출가한 뒤에도 그냥 안일한 차원이 아니라 가장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석가모니 같이 빈궁하고 가장 청빈한 생활을 한 그런 수행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석가모니께서 불성을 성취한 그런 수행공덕을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각고의 난행고행 끝에 닦아서 깨달은 것이 우리 인간생명과 우주의 본바탕인 불성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차원으로 보지 않고서는
우리의 본래 면목인 우리 본 생명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내 생명의 본바탕은 불성이고
김아무개 또는 박누구 이것은 가짜입니다.
이것은 가아입니다.
망아입니다.
이것은 망령된 나, 이것은 가짭니다.
가짜를 진짜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가짜는 분명히 가짜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어떻게 했다, 학벌이 어떻다 해도 이런 것은 결국 인간적인 하나의 시비분별에 의한 것이고
참다운 지혜는 못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도 역시 가짭니다.
진짜는 인간의 탐욕 또는 분노심 또는 어리석은 마음 이러한 삼독심을 딱 바꾸어서
조금도 혼탁이 없는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이른바 불심을 얻어야 그래야만이 참 자기란 말입니다.
그래야 그때는 대아란 말입니다.
육법공양을 시작했다.
등, 향, 꽃, 과일, 마지, 차를 올리는 공양의식이다.
삼가 이 자리에 모인 청정대중들은 목욕재계하옵고
옛 선인의 여법한 법식에 따라
시방 삼보전에 육법의 공양물을 진설해 올리고자 하나이다.
저희들의 이 작은 정성을 어여삐 여기사 굽어 살펴 주옵소서.
오늘 저희들이 정성껏 마련한 이 작은 등불이 마침내 온누리를 밝힐 반야광명이 되고
향은 해탈지견이 되며
차는 감로제호가 되고
밥은 법희선열이 되며
나아가 꽃이나 과일들도 비록 보잘 것 없는 세제의 장엄물에 불과하오나
부디 자비와 정혜의 훈습으로 낱낱이 마침내 일체 중생을 깨우치고 인도할 미묘한 법공양의 공덕을 이루어지이다.
오직 바라옵건대 시방 제불보살님이시여!
저희들의 이 작은 공양을 부디 굽어 감응하옵소서.
뜨락의 꽃
꽃은
피어서 스스로 공양하니
참으로 선재다.
등도 환하여
스스로를 공양하니
참으로 선재다.
스스로 빛나
스스로 공양하는
모두가 선재다.
모두가 그렇게 미소다.
편안히 덕담을 나누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청화스님의 뜰을 찾아 걷는다.
가도 간 것이 아니었나.
오늘은 그 텅 빈 자리에서
청화스님의 스승이신 금타스님을 뵈었다.
나는 그저 두손모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