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름 주둔소로 들어가는 길.
옛탐라대 사거리에서 서귀포 방향 제2산록도로로 가다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어서 나타나는
제6산록교 옆으로 차를 세우고, 다리에서 동쪽으로 50m 걸어가면
길 오른편 풀숲에 덮힌 시오름 주둔소 가는 길이 나온다.
앞서간 사람들이 남긴 표식을 찾을 수 있다면
시오름 주둔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숲속의 표식.
여기저기
비바람에 쓰러진 표식이 많다.
쓰러진 표식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바로잡아주는 것도
뒷사람들이 할 일.
그렇게
앞서 걷던 이들의 표식에 남겨진 마음을 읽으며
숲길을 걷다보면
서귀포시 서호동 산 1번지 깊은 숲속에서
낯선 모습의 시오름 주둔소가 나타난다.
시오름 주둔소 전경.
제주 4.3 그리고 이어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제주의 군경 토벌대는
한라산에 남아 있는 무장대를 섬멸하기 위해
1952년 제100 전투경찰사령부를 창설했다.
이들은 잔여 무장대를 토벌한다는 구실 하에
해발 600미터 고지에 무장대와 지역주민과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한
군경 주둔소 설치에 나섰고, 1952년 4월까지 32개의 주둔소가 생겨났다.
그런데 이 시오름 주둔소는 그들 주둔소와는 달리
1948년 말경부터 이 지역 서호마을 부녀자들이 동원되어 쌓아지고 있었다.
1949년에는 서호동 주민들뿐만 아니라
인근의 강정과 법환 호근동 주민들까지 동원하여
삼각형 형태로 쌓았는데
이후에는 제100 전투경찰사령부의 주요 거점이 된다.
그날 이후로
이곳에
차곡차곡 쌓인 건
낙엽뿐.
한 면의 길이 40여미터
높이 약3미터
폭 1미터
군데군데 허물어진 곳도 있으나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전체 길이 약 120미터의 이 주둔소는
동원된 마을 주민들이
겨울에 식량보급도 없이
한달만에 쌓은 성이다.
둘러진 성 안으로는
다시 돌담을 쌓은 구조물의 흔적이 보인다.
군경 토벌대와 마을 협력자들이 머물던 곳이며
식사 준비를 위해
마을에서 차출된 부녀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총구
이데올로기를 겨냥하던 이들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데올로기의 성에
아나키스트처럼 떠도는
낙엽들.
무장대가 나타나지 않는
주둔소에서
그들의 일상은
혹시 무료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밤하늘에도
달이 뜨고 별도 뜨니
집생각에 밥생각에
간혹 불면의 밤도 보내지 않았을까.
전쟁은
결코 민중의 것이 아니니
오직 총구에서 권력이 나온다고 믿는 어떤이들의 것일뿐이니
이제 우리는 잠 좀 자자.
이제 총을 내려놓고 쉬자.
성담도 그만 쌓자.
이제 그만 쉬자.
역사의 거미줄에 걸린
모든 상념을
이제 하나씩 날려보내자.
옹성 형태의 경비 초소.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부녀자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쌓은 성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이데올로기가
과연
생명보다 소중한 것인가 하는
오래된 의문만 빼고
있을 건 다 있었다.
시오름 주둔소
바로 밑은
계곡
그날 이후로
나무는 훌쩍 커서
시야를 가린다.
오래된 이끼가
바위를 덮는다.
그러나
가리고
덮어도
햇살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4.3 그날의 진실도 어서 온전히 세상에 드러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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