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에 오셨나.
이덕구산전이라고 아시나.
그렇다면 천미천 목교를 건너야지.
일부러라도.
그 천미천 계곡을 따라
이제
천천히
제대로 걸을 준비를 해야지.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는 동백꽃 리본.
만나지 못하였다면 포기해야지.
인연이 아니니까.
이덕구 산전 가는 길.
사려니숲길의 안내원들에게 물어도 소용이 없지.
그들도 잘 모르는 길.
인연 되는 이들에게만 권하는
가을 숲길.
참 좋은 길.
참 슬픈 길.
그러나
구태여 인연없는 이를 부를 일도 없는 그런 길.
교래 북받친밭.
1949년 2월 4일
제주읍 동부 8리에 대한
국군토벌대의 살육을 피해
봉개리 주민들이 선택했던 피난지 이곳 '시안모루', '북받친밭'.
이곳에 숨어들었던 봉개리 주민들은
귀순하면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모두 귀순하였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해의 봄날
이덕구가 이곳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이곳은 이덕구 산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덕구가 걸었던 길
이덕구가 누구인가.
백과사전에는 이덕구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덕구는
제주시 조천 신촌리 지방 유지인 이근훈의 3남으로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재학 중 관동군으로 입대했고
1945년 귀향하여 신촌중학교 사회선생님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제주 4,3 사건이 발발하면서 한라산으로 들어가
제주도 인민 유격대 3.1지대장을 맡아
제주읍과 조천읍 그리고 구좌읍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1948년 8월 이후에는 제주도 인민유격대 사령관 직책을 이어받았고
1949년 6월 경찰과 교전하다 사망하였다.
제주 4.3사건이 발생하기 전
광복직후 제주사회는
일본으로 구직을 위해 건너갔던 6만여명의 귀환으로 인한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의 창궐, 극심한 흉년, 미곡정책의 실패, 일제경찰의 군정경찰로의 변신
그와 더불어 군정관리의 모리 행위로 극심한 혼란을 겪는 와중에
1947년 3월 1일 관덕정에서 경찰의 민간인에 대한 발포로 인해 민심은 더욱 악화되었고
이후 그에 대한 저항이 제주도 전체 직장 95%의 총파업으로 이어졌으나
이승만 정권이 서북청년 등을 제주도에 파견하여
제주도민에 대한 살인, 강간, 약탈은 물론 고문과 테러와 횡포를 자행하면서
제주도는 회복 불능의 섬으로 치달았다.
그 시기의 이덕구는
중학교에서 사회와 체육을 담당하던 교사.
이덕구가 목격하였던 제주사회는
제주도민에 대한 이승만의 살인, 강간, 살육 그것뿐.
한라의 품으로 숨어들어왔던
그들이 걸었던
이 붉은 단풍길
부당한 권력에 기죽지 않았던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그 한사람 한사람의 가느다란 흔적들이 이어져 있는 길.
아무런 이유없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다.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버린 것이
억울한 것이다.
이덕구 산전에 도착했다.
이덕구는 사살된 후
관덕정으로 그 시신이 옮겨져와 '전시'되었다.
당시 이덕구의 시신에는
숟가락 하나가 웃옷 주머니에 꽂혀 있었는데
이덕구를 비롯한 한라산의 유격대원들은
이 지상에서 오직 숟가락 하나 지닌채
이 산 저 산을 옮겨다니며
정의와 자유를 주장한 것이 그들 삶의 전부였다.
밥솥 하나와
웃옷 주머니에 꽂힌 숟가락 하나는
함께 나누며 행복했던
그들의 자유에 대한 자긍심.
그 자긍심은
깨어졌고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산사람들이 머물렀던 곳
그곳에 남은 흔적들
숟가락 하나 놓인 밥상이
저 멀리
저 홀로
숲을 견디고 있다.
그 외로운 숟가락이 기억하는
이덕구산전.
그들이 머물렀던
작은집.
그 기억들을 뒤로 하고
천미천 계곡을 걷는다.
체게바라보다
멋졌고
체게바라보다
슬펐던
사회선생님 이덕구.
낙엽지듯
총알지고
낙엽지듯
떠나간 그들을 기억하며
설움이 북받친 길을 걷는다.
사려니에 오셨나
까마귀떼 목놓아 우는 울음소리에
행여나 뒤돌아보지는 않으셨나
혹시 그런 기억이 있다면
이덕구산전의 그 사나이들
그 짧았으나 화려했던 인생들이 다녀간 길도
기웃거려보시라.
그곳에 초개처럼 목숨을 버린 사나이들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4 와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의합장묘, 송령이골 (0) | 2018.03.17 |
---|---|
4·3 70주년 사진전 - 소리없는 기억 (0) | 2018.03.10 |
회향 回向 (0) | 2017.04.01 |
동복, 행원 4·3 위령탑 (0) | 2017.04.01 |
동광리 헛묘 (0) | 2017.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