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보은군 산내면 속리산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법주사
법주사 하마비 下馬碑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하마비는 태종 13년인 1413년 2월 예조의 건의로 왕의 허가를 받아 세우게 되었다.
하마비에는 "大小官吏過此者皆下馬, 대소관리가 이곳을 지나가려거든 모두 말에서 내려라"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이후 하마비에는 비석을 세운 목적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생겨났는데,
이곳 법주사 하마비에는 화소火巢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화소火巢는 산불 예방을 위해 그 구간의 불쏘시개가 될 만한 나무들을 미리 태워 없애는 것을 말한다.
이곳 법주사의 하마비는 법주사 경내의 순조대왕 태실 조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태실은 길지에 태를 안치하는 풍습으로 태장경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순조태실은 순조 6년인 1806년에 석물과 태실비를 더하여 그 규모를 갖추었으나
1928년 일제강점기에 태항아리가 창경원으로 옮겨지면서 훼손되었다.
말에서 내리듯
마음에서 내리면
산행이 시작된다.
걸어야 보이는 풍경
우리 민족의 언어로 팔만대장경을 옮기려는 서원을 세우고
새로운 소리문자를 만들기 위해 정진하고 있던
신미대사.
그 신미대사에게 세종의 뜻을 전하기 위해
움직였던 이가
세조.
새로운 소리문자처럼
숲은 싱그럽다.
관음암으로 가는 갈래길
법주사 일주문에서 세심정까지 평탄한 길을 1시간 남짓 걸어온 다음에
관음암으로 가는 갈래길로 빠지면 된다.
법주사 일주문에서 관음암까지는 대략 3시간.
가을이 오는 속리산
비로산장에
잠깐 인사를 건네고 가도 된다.
마음도 얼굴도 고운 산장 주인께서
커피를 권한다.
법주사 상고암 방향으로
길이 또 나뉜다.
속리산 깊은 품이 초행이라
상고암 참배는 다음으로 미루었다.
관음암가는 표지목에
잘못된 길 안내가 고쳐지지 않고 있다.
경업대까지가 1.2km이면 관음암이 지척인데
관음암이 2.5km로 표기된 것이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라도
정확한 안내가 필요할 것이다.
관음암이 가까울수록
가을도 가깝다.
반가운 연등
관세음보살
관음암 일주문
마음을 내려놓으면
누구나
이 석벽 일주문을 통과할 수 있다.
관음암의 장군수.
14살 때부터
관음암 운여대사님과 함께 검술연습을 하고
7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속리산 60리를 돌아다니며
심신을 연마하고 이 장군수로 아침을 해 먹었다고 한다.
민중에게 비친 병자호란 당시 임경업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고전소설 임경업전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관음암에 들어서니
관음암 부도밭이 먼저 눈에 잡힌다.
관음암은 신라 문무왕 3년인 663년 회월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관음암은 1955년경 선암仙巖스님에 의해 인법당 형식으로 중창되기 시작하여
1971년에 법당을 중수하고, 1975년 탑을 세워 사찰의 면모를 가다듬었다.
하늘에 기댄 조그만 인법당
가을의 수인手印
일체유심조
관세음보살
속리산 정중앙의 관음암
복덕구족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속리俗離가 여기구나.
소백산맥 줄기의 신령스러움이
가을하늘에 가득하다.
관음암 옆의 경업대
이곳 경업대는 임경업 장군이 독보대사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한 곳이라고 한다.
경업대에서 바라본 입석대
입석대
원래 누워있던 바위를 임경업 장군이 7년 수도 끝에 세웠다고 한다.
좀더 걸으면
신선대와 문장대까지도 오를 수 있다.
속俗에 살면서
속리俗離를 꿈꾸는 신선들의 이상향.
속리산俗離山.
산도 좋고
속俗도 좋은 것은
속俗에 살면서도 산에 살듯 사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