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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속리산 법주사

by 산드륵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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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속리산 법주사

속리산은 9개의 봉우리가 있어서 구봉산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천황봉과 관음봉의 영기가 내려와 맺힌 자리에 법주사가 있다.

 

 

법주사의 최초 창건은 신라 진흥왕 14년인 553년 의신대사가

천축국에서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 머물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들렀다가 길상초를 발견하고 그 자리를 표시를 해 두었다가,

훗날 속리산 영심스님에게 "속리산에 가면 길상초가 피었던 곳에 표시를 해 둔 곳이 있을 터이니,

그곳에 절을 세우라."고 하였다.

그때의 사명은 '속리사'로 고려 인조 때까지도 이 사찰은 '속리사'라고 불려왔다.

현존하는 '법주사 사적'은 1630년대의 기록으로 건물 60여동, 석조물 10여점, 그리고 암자가 70여 개소가 된다. 임진왜란 당시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벽암선사에 의해 중창되었다.

따라서 최초의 길상사에서 속리사, 그리고 법주사로 사명을 바꾸며 속리산과 함께 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세조 당시에는 신미대사가 머무는 등 대찰로 성장했던 법주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전소되었으나, 1605년부터 1626년까지 사명대사가 팔상전을 중건하고,

벽암대사가 전각을 중수하며 재건에 나섰다.

 

 

그 법주사에

10월이면 축제가 열린다.

 

 

법주사의 미륵대불과 팔상전, 쌍사자석등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국내 최대의 청동대불이다.

8m의 기단 위에 높이 약 25m의 대불이 서 있다.

기단은 용화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벽면에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법주사 팔상전.

우리나라 현존 유일한 목탑으로 국보 제 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건당시 의신대사가 세웠고 진표율사가 중창했으나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것을

1602년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전각 내부에는 팔상도가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의 일생을 표현한 팔상도 앞에 불단이 있고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법주사 쌍사자 석등.

신라 성덕왕 19년인 720년에 조성되었고, 국보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팔각 지대석 위에 복련석을 올리고, 그 위에 두 마리 사자가 양련석을 떠받들고 있다.

법주사 사자 는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가슴을 서로 맞댄 후에 앞발과 주둥이로 윗돌을 받치고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석등을 밝혀왔는데 사자꼬리는 어디로 갔을까.

 

 

법주사 가을 축제.

법향 가득한 도량에 저마다 심향心香이 되어 한들한들 흐른다.

 

 

법주사 석련지.

신라 성덕왕 19년인 720년에 조성되었다.

국보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주사 본당 용화보전의 장엄품으로 설치되었던 것이라 한다.

극락정토의 연지를 조각해낸 것으로 높이 1.95m, 둘레 6.65m이다.

 

 

법주사 석조.

신라시대 석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크기이다.

높이 1.3m, 길이 4.46m, 너비 2.42m이며, 쌀 80가마를 채울수 있다고 한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이 미륵불상은 고려시대 마애불로서 높이는 약 6m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며, 지장보살과 함께 조각되어 있다.

 

 

미륵마애보살상

 

지장보살

 

 

법주사 부도전

 

 

수정암

 

 

수정암 부도전

 

 

모두 선정에 들어있다.

 

 

법향

심향

쌓아올린

미륵의 법주사

 

탑이 되어 쌓아올린 인생이

향이 되어 허공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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