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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사찰

대정 서산사

by 산드륵 2023.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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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해안가의 서산사

 

 

오래된 미래에까지 종소리를 전하는 종각이 2023년에도 남아있다. 반가움이 더한다.

 

 

대정읍 동일리 서산사는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의 선봉대장이었던 강창규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그 의의가 깊다. 강창규 스님은 1918년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으로 인해 투옥되어 5년 11개월 8일을 복역하고 이후 죽림사에 머물다가 제주도로 돌아와 법화사 등에서 잠시 지내다가 이곳에 서산사를 창건하셨다. 이 서산사의 창건연대는 1943년이라고 하나 이미 그 이전부터 암자 형태로 지어져 활동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강창규 스님은 서산사 창건 이후에도 일제에 협력하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사찰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창건 연대를 확인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며, 또한 당시의 건축물대장에는 1932년 사찰이 완공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서산사는 해방 이후에 다시 한번 새로운 도약을 꿈꾸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산사는 1958년 보청사와 법상사를 통합하여 성불사로 사명을 바꾸었다. 당시 박용봉 스님이 성불사를 인수하여 중창불사하고 1962년 조계종단에 등록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서산사로 사명을 바꾸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서산사 공덕비. 

 

 

창건주 강창규 문말백 기념비

 

 

"1928년에 암자 형태로 창건되었고, 1967년 안성원스님에 의해 38평 법당을 건립하였으며, 이후 1979년 문성빈 스님에 의해 종각불사가 이루어졌다. 1993년에는 대웅전에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삼불을 조성하고 요사채 27평을 건립하였다. 2009년에는 노후된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932년 건축물대장에 등기되었으니 1928년에 강창규스님께서 이곳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는데, 관련 인물들이 대부분 사망하고 증언해줄 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만큼 기록의 재정비가 시급해 보인다.

 

 

서산사 대웅전은 1967년 안성원스님께서 석조건물로 중건한 것인데 2009년에 다시 개보수하였다.

 

 

서산사 범종각은 1979년 문성빈스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범종에 문성빈 주지스님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인다.

 

 

배롱나무가 있던 자리로 기억하는데 베어낸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겠지 싶다.

 

 

서산사 대웅전

 

 

석가모니불과 좌우협시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서산사 목조보살좌상

 

 

강창규 스님께서 평생을 모시고 다니던 보살상이다.

 

 

강창규 스님은 이곳 서산사에서 출가사문으로서의 마지막 행적을 남겼는데 정확히 언제 입적하셨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창규 스님의 동생인 강수오도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으로 투옥되었다가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하고 직계혈육이 없는 터라 정확한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제 제20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서산사 목조보살좌상. 복장물에서는 이 보살좌상이 1543년 조성되었으며 전라도 나주 지역에서 조성된 후 제주도로 이운되었음을 알려주는 기록물이 나왔다. 깊은 눈매와 부드러운 선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근대제주 역사의 최선봉에서 살다간 선지식의 마지막 행적지.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강창규 스님은 서산사 앞 바닷가 바위 어디에서 좌선에 든 채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오래전에는 그 자리에 비석이 세워져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열반에 든 그 자리는 찾을 수가 없다.

 

 

바닷가에 있었던 강창규 스님의 비석은 서산사의 해안길을 따라 100여미터 내려간 지점에 옮겨 세워져있다.

 

 

고 강창규 화상 비

 

 

비석은 불기 2511년 2월 22일 세워졌다. 불기 2511년인 1967년은 안성원스님께서 서산사를 중건하시던 해이다. 그렇다면 1967년 즈음에 강창규스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안성원스님께서 서산사에 주석하며 중창불사에 나선 것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당시의 사명은 성불사. 강창규스님께서 창건하셨고 이곳에서 열반에 드셨다고 알려졌지만 강창규스님께서 이곳에 머물던 시기에도 서산사의 주지스님은 용봉스님, 혜운스님, 동철스님 그리고 성원스님, 성빈스님 등이 기록에 등장한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 이후에 강창규 스님의 상태는 과연 어떠했던 것일까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핍박의 시대에도 기름졌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출세가도를 달리는 요즘, 가난한 역사와 그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큰 빚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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