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애월읍 한대오름.
소길리, 금덕리, 어음리, 봉성리를 품은 숲산. 표고 921m, 비고 약 30m의 야트막한 오름이지만 노루오름, 삼형제오름, 바리메오름, 노꼬메오름 등 어디서도 접근할 수 있고 또한 그 어디로도 발길을 돌릴 수 있다. '한대오름'의 어원은 알 수 없으나 물기를 품은 바람 가득한 '한대'의 그 너른 길에서는 그냥 이곳이 '한대'로구나 하고 느낀다. 한대오름 여기저기서 보이는 습지 식물들은 '숭물팟'이라 하여 '땅 속에 물이 숨어 있는 풀밭'을 드러내 보여주는데, 깊은 숲에서 만나는 습지식물들은 한대오름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곳 한대오름 숲길로 단풍이 들어오는 시기는 10월말에서 11월초 즈음이다.
노을...이외수
허공에 새 한 마리
그려 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너무 쓸쓸하여
점하나를 찍노니
세상사는 이치가
한 점안에 있구나
멀리서 빈다...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가을의 소원...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멸치의 열반...장용철
눈이 꼭 클 필요 있겠는가
검은 점 한 개 콕 찍어 놓은 멸치의 눈
눈은 비록 작아도
살아서는 바다를 다 보았고
이제 플랑크톤 넘실대는 국그릇에 이르러
눈 어둔 그대들을 위하여
안구마저 기증하는 짭짤한 생
검은 빛 다 빠진 하얀 눈
멸치의 눈은 지금 죽음까지 보고 있다
도량(道場)...임보
시장 밑바닥에 굴러다니던 삼돌이란 놈이
세상이 시끄럽다고 큰 산을 찾았다
석파(石破) 스님이 된 삼돌이 그러나
절간도 소란스럽다고 암자에 나앉았다
하지만 암자의 목탁소리도 번거로워
토굴을 파고 그 속에 홀로 묻혔다
토굴의 벽을 맞대고 열두 달은 지났는데도
천만 잡념이 꼬리를 물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러구러 서너 해가 바뀌던 어느 여름날 밤
한 마리 모기에 물어뜯긴 석파 문득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제 몸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토굴을 박차고 다시 시중으로 내려와
팔도 잡패들이 득실거리는 시장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자신을 다스리기로 했다
조약돌을 닦는 것은 고요한 물이 아니라
거센 여물이 아니던가
수십 성상이 지나 석파의 머리도 세어졌다
어느 날 천둥이 그의 머리를 깨고 지나갔는데
세상을 내려다보니
모두가 다 부처요, 보살 아님이 없었다
미시령 노을...이성선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 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산에 사는 날에...조오현
나이는 뉘였뉘였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스님을 찾아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 보았다
말로는 말 다할 수 없으니 운판 한번 쳐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사는 날에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고
그리고 흐름을 다한 흐름이나 볼일이다
걸인의 노래...이외수
삶은 계란
반으로 잘랐더니
그 속에
보름달이
두 개나 숨어 있었네
세상이 이토록 눈부신 뜻
내장만 비우고도 알 수 있는 일
11월... 고은
낙엽을 연민하지 말아라
한자락 바람에
훨훨 날아가지 않느냐
그걸로 모자라거든
저쪽에서
새들도 날아가지 않느냐
보아라 그대 마음 저토록 눈부신 것을
마른 나뭇잎...정현종
마른 나뭇잎을 본다.
살아서, 사람이 어떻게
마른 나뭇잎처럼 깨끗할 수 있으랴
한대오름의 숲길이 끝나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이 나온다.
하늘 그리고 구름 그리고 바다
원물오름, 도너리오름, 당오름, 정물오름
발밑에는 다래오름, 새별오름
한라산과 삼형제오름
노로오름
삼형제오름
용담
화살나무
청미래
도토리
담쟁이
가을 허공을 딛고 인연의 길을 담쟁이처럼 기어간다. 그곳에 가을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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