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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매화梅

by 산드륵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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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도 지났는데

매화는 어디까지 왔나 궁금하여

주섬주섬 길을 나섰다.

안덕면 덕수리 노리매로 먼 길을 떠났다.

 

 

능수매화

 

 

매표소 직원에게

오늘은 매화가 어느만큼 피었나 물었더니 60%라 그랬는데

막상 매화를 마주 대하니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음을 깨달았다.

 

맺힌 봉오리도 꽃이요

활짝 피어도 꽃이요

모두 져도 꽃이고

향香으로만 남아도 꽃인 것을

여전히

모르다니

 

 

그래도 더욱 만개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2월 15일부터 2월 말까지가 탐매에 적절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이 길에 매화 흩날리고 발길에 밟혀야 우리같은 매화인들의 가슴이 찢어질텐데 오늘은 비 소식도 바람 소식도 없다. 일기예보를 확인하여 비오고 바람부는 날에 다시 찾아볼 예정이다.

 

 

흐르는 저것이 매화 꽃잎인가

 

 

목련이 터지지 전까지만

매화 향香 곱다

 

 

증고우선화贈古友禪話/ 만해 한용운

 

看盡百花正可愛 從橫芳草踏煙霞

一樹寒梅將不得 其如滿地風雲何

 

가히 사랑스러운 온갖 꽃 다 보았고 안개 속 고운 풀도 종횡으로 밟아보았으나

한 그루

차가운 매화는

얻을 수 없었으니

이 땅에 바람과 구름만 가득한 것과 같아, 이를 어찌할까

 

 

「증고우선화贈古友禪話」는 만해 한용운이 1919년 33인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을 선포한 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복역 중일 때,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변절했던 古友고우 崔麟최린에게 보낸 시이다. 최린은 변절 이후에 친일파로 활동하면서 중추원 참의, 매일신보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화송/신석초

 

風雪 같은 차운 골짜기에

봄은 오는가

매화, 네가 아니 핀들

오는 春節이

오지 않으랴마는

 

온갖 잡꽃에 앞서

차게 피는 네 뜻을

내가 부러 하노라

 

 

매화나무 수도승/이동근

 

섬진강 화개花開 물 따라가는 길

매화잎도 지고

힘찬 가지만

바람도 흔들지 못하고

묵묵하늘

매화나무의 동안거 결제結制

묵묵정좌默默正坐

 

새날이 올 봄까지

 

뿌리가 물러지도록

자리

 

소복이 내려 덮은 잎

온기로 견디어

 

바람도 비켜 가는 것일까?

가부좌

매화나무 수도승修道僧

 

빈 나무 안의 꽃

 

 

매화를 찾아서/신경림

구름떼처럼 모인 사람들만 보고 돌아온다

광양 매화밭으로 매화를 보러 갔다가

매화는 덜 피어 보지 못하고.

그래도 섬진강 거슬러 올라오는 밤차는 좋아

산허리와 들판에 묻은 달빛에 취해 조는데.

차 안을 가득 메우는 짙은 매화향기 있어

둘러보니 차 안에는 반쯤 잠든 사람들뿐.

살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과 악취가

꿈과 달빛에 섞여 때로 만개한 매화보다도

더 짙은 향내가 되기도 하는 건지.

내년 봄에도 다시 한번 매화 찾아 나섰다가

매화는 그만두고 밤차나 타고 올라올까.

 

 

매화, 아파라/정도영

 

힘겨운 나날에

칼바람도 더하여

 

언덕 위 바투 서서

속절없이 아파라

 

한 겹의

깨끼 모시옷

절의의 저 만고 서슬

 

 

법정스님의 꽃을 보는 법

 

매화는 반만 피었을 때가 보기 좋고,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가 볼만합니다. 또 복사꽃은 멀리서 바라볼 때가 환상적이고, 배꽃은 가까이서 보아야 그 꽃의 자태를 자세히 알 수가 있습니다.

 

 

조선 매화/송수권

 

예닐곱 그루 성긴 매화 등걸이

참 서늘도 하다

서늘한 매화꽃 듬성듬성 피어

달빛 흩는데 그 그늘 속

무우전無憂殿 푸른 전각 한 채도

잠들어 서늘하다

 

 

매화/진화(고려 시인)

 

東君試手染群芳

先點寒梅作淡粧

玉頰愛含春意淺

縞裙偏許月華凉

數枝猶對撩人艶

一片微廻逐馬香

正似淸溪看疎影

只愁桃李未升堂

 

봄의 신이 뭇 꽃을 물들여보고자 할 때

겨울 매화를 먼저 점찍어 엷게 단장시켰네

옥 같은 뺨은 봄뜻 살짝 머금어 사랑스럽게 하고

흰 치마에는 달빛의 서늘함을 아주 조금 허락해 주었지

꽃가지 몇 개만 대하여도 사람의 마음 사로잡고

한 조각 향기는 말을 돌려 돌아갈 때도 옅게 휘감아 돌았다

맑은 시내에 어린 성긴 그림자를 보는 듯한데

복숭아 오얏꽃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구나

 

 

소군원昭君怨 매화梅花/정역鄭域

 

道是花來春未 道是雪來香異 竹外一枝斜 野人家 冷落竹籬茅舍 富貴玉堂瓊謝 兩地不同裁 一般開

 

꽃이 왔네라고 말하자니 아직 봄은 아니고, 눈이 내렸네라고 말하자니 향기가 이채롭네.

어느 시골집의 대숲 밖으로 비스듬히 뻗은 가지.

쓸쓸하고 쓸쓸한 대울타리 초가 혹은 부귀한 옥당경사 서로 다른 두 곳에 심어져 있어도 같은 모습으로 피었구나.

 

 

매화/왕안석

 

墻角數枝梅

凌寒獨自開

遙知不是雪

爲有暗香來

담장 모퉁이 매화 가지 몇 개

추위를 이기고 홀로 피었네

멀리서 보아도 흰눈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음은

은은하게 전해지는 향기 때문이지

 

 

탐매探梅/육유陸游

 

江路雲低糝玉塵

暗香初探一枝新

平生不喜凡桃李

看了梅花睡過春

강이 이어지는 길에 구름 내려앉고 옥같은 먼지 날리는데

은은한 향기 찾아드니 한 줄기가 새롭네

평생토록 복사꽃 오얏꽃에 기뻐할 것도 없었는데

매화를 보고 나니

아하

졸면서 봄을 지나네

 

 

우제偶題/몽관 이정

 

性本不愛酒

猶貯酒一甁

多恐悠悠者

將我號獨醒

蕭瑟梅樹下

朗讀離騷經

世無獨醒者

要使梅花聽

耽詩癖於杜

百年不憚勞

謂到山盡處

復有一層高

 

본래 술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그래도 술 한 병은 놔두고 사네

한가한 이들에 대한 겁이 많아

나 혼자 술 깨어 있다 말할까봐

쓸쓸한 매화나무 아래에서

소리 내어 이소경을 읽는다네

홀로 깨어 있을 수 없는 세상이어서

매화에게 들려주는 길밖에 없다네

시를 탐하는 버릇이 두보보다 심하여

평생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네

산자락 다 한 곳에 다다른 줄 알았는데

더 높은 산이 다시 나타나네

 

 

설매雪梅/노매파盧梅坡

 

有梅無雪不精神

有雪無詩俗了人

日暮詩成天又雪

與梅幷作十分春

 

매화 피었는데 눈이 내리지 않으니 무언가 부족하고

눈이 내리는데 시 한 수 없으니 사람이 속되게 여겨지네

날이 저물 무렵 시 한 수 완성되고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니

매화와 더불어 봄이 이루어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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