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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사찰

연등

by 산드륵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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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어둠을 밝히는 한마음선원의 등불

 

 

'공생共生 공심共心 공체共體 공용共用 공식共食'으로 마음을 밝히는 법에 대해서, 한마음선원 창건주인 대행스님의 말씀이 있다.

 

몸뚱이 하나를 놓고볼 때

이 몸뚱이 하나가 움직인다는 것은 눈, 코, 입 등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몸뚱이 하나의 개체가 전부 동시에 듣고 동시에 보고 동시에 움직거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한마음으로서 한 개체로서 이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도 이것이 공체共體인 것입니다. 공체인데 항상 스스로 생각할 때는 '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는 내 몸뚱이 하나다.' 이렇게요. '내 몸뚱이 하나고 나뿐이다. 외롭다."고 그러지요. 그런데 외롭지 않아요. 이 몸뚱이 하나 속에도 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바로 공체죠. 그리고 또 공체로서 움직거린다면 공용共用이지요. 어떻게 자기가 개별적으로 움직거리겠습니까? 그러니까 같이, 더불어 같이 움직거리기 때문에 공용이죠. 그리고 공식共食이고요. 그래서 '공생共生 공심共心 공체共體 공용共用 공식共食'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공심으로서 쓰는 것이 지혜이고, 공심이 아닌 개별적으로 '내'가 이렇게 '나'대로 그냥 마구 말하는 걸 지혜롭지 못하다고 하는 겁니다. 항상 '이 몸뚱이도 공체이고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더불어 같이 사는 거구나. 더불어 같이 움직거리는 거구나. 더불어 같이 보는 거로구나. 더불어 같이 먹는 거로구나. 더불어 같이 생각하고 사는 거로구나. 그러니 '나'라고 세울 게 뭐 있겠나. 내가 혼자 했다고 할 게 뭐 있겠나. 내가 혼자 봤다고 할 게 뭐 있겠나. 혼자 들었다고 할 게 뭐 있나. 내가 산다고 할 것도 없다. '나'를 세울 게 하나도 없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모두 공해서 초월해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했다. '나'다. '내'가 한다. '내'가 먹었다. '내'가 산다. 이런 말이 싹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공생이면서 공심이면서 공체면서 공용하고 있구나. 그리고 공식화하고 있구나,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내가 했다고 하며 '나'를 세울 수 있겠느냐. 이 공체를 어떻게 '나'라고 세울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부처님 오신 날

 

 

'무아無我'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그것이 '무아無我'의 경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대자유의 세계

 

 

그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길에

관세음보살이 항상 함께 한다.

 

 

꽃이

스스로 피어나

공양하듯이

 

 

등불이

스스로

어둠을 밝히듯이

 

 

찬란한 빛의 세계

 

 

그 때 부처님께서는 정수리와 미간백호眉間白豪로부터 백천만억의 크고 훌륭한 광명을 놓으셨으니, 그 광명은 이른 바 백호상광白豪相光이요 대백호상광이며, 서호상광瑞豪相光이요 대서호상광이며, 옥호상광玉豪相光이요 대옥호상광이며, 자호상광紫豪相光이요 대자호상광이며, 청호상광靑豪相光이요 대청호상광이며, 벽호상광碧豪相光이요 대벽호상광이며, 홍호상광紅豪相光이요 대홍호상광이며, 녹호상광綠豪相)이요 대녹호상광이며, 금호상광金豪相光이요 대금호상광이며, 천륜호광千輪豪光이요 대천륜호광이며, 보륜호광寶輪豪光이요 대보륜호광이며, 일륜호광日輪豪光이요 대일륜호광이며, 월륜호광月輪豪光이요 대월륜호광이며, 궁전호광宮殿豪光이요 대궁전호광이며, 해운호광海雲豪光이요 대해운호광이며, 경운호상광慶雲豪相光이요 대경운호상광 등이었다.

 

 

그 세계로 들어섰으니

스스로도 빛이 되어야함이 마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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