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문 건너면 영천사
영천사 연등을 보려고 먼 걸음 했으나
영천사 노스님은 아직 연등을 내걸지 않으셨다.
초파일 일주일 전에나 연등을 내걸 생각이시란다.
불이문不二門 이 편 저 편 없이
꽃들이 연등처럼 피어나니
등꽃은 차일피일 미루시나보다.
영천사 고운 꽃
영천사 마니차
경전을 적은 종이가 들어있는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고
두 번 돌리면
죄업장이 소멸되고
세 번 돌리면
소원성취하고
백팔번을 돌리면
다겁생의 업장을 소멸한다고 한다.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반메훔
대일여래의 비밀한 주문인 옴마니반메훔
대비大悲와 보리심을 근본으로 구경성등정각에 이르는 티베트 불교의 모습을 이곳 영천사에서 만나게 된다.
영천사 대웅보전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하였다.
고운 등불
고운 도량
노단새미
영천사가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절래왓이라고 구전되던 곳으로 호종단도 그 맥을 끊지 못하였다는 노단새미가 있어 고대로부터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근대시기에는 안봉려관 스님이 오문복 행자와 노단새미에서 7일 기도를 하고나서 이곳에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할 것을 권하였다고도 한다. 이후에 이곳에 김석윤 스님이 1934년 2월 23일 4칸 규모의 초가 대웅전과 3칸 규모의 초가 객실을 건립하여 봉주사로 창건하였고, 1936년에는 위봉사 표선포교소로 등록했다. 1942년에는 강을심보살님이 봉주사를 인수받아 운영했고, 1943년에는 백양사 포교소로 변경하였다. 제주 4.3 당시인 1948년 12월 12일에는 마을 주민과 함께 토산 2리로 소개되면서 사찰 일체가 철거되었다. 당시에 사찰의 불상과 탱화는 대나무 밭에 움막을 만들어 숨겼으나 훼손되어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봉주사의 재건은 1949년에 이르러 시작되었으며, 1966년에 봉림사로 개명하였고, 다시 1967년에 영천사로 사명을 바꾸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노단새미 꽃길
노단새미 물길
고운 절이다.
영천사 사적비
인연은 빛이었다.
동음창화同音唱和의 영천사 생명헌장
그 영천 노단새미에
빛으로 온 인연을 잘 간직하여
고운 연등이 오래오래 내걸리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