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와 화천군 화천읍 동촌2리에 걸쳐있는 평화의 댐.
80년대에 대한민국에 살았던 이들은 세대마다 이 평화의 댐에 대한 몇 가지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북한 금강산 발전소가 건립되면 서울이 3분의 1 이상 침수된다는 ‘서울 물바다’ 공포에 대한 기억이다.
당시 전두환은 북한이 휴전선 북방 10km 북한강 본류와 만나는 곳에 대규모의 금강산댐을 건설하고 그 물을 원산 쪽으로 역류시켜 발전하는 공사를 진행 중인데, 이 댐이 완성될 경우 화천방면을 거쳐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연간 18억t의 공업 및 생활용수의 공급이 중단될 것이며, 또한 만일 9억t의 물이 방류되면 한강 인도교 부근 수위가 표고 20m가지 상승해서 제방(18m)을 월류해 서울의 3/1이 침수될 것이고, 금강산댐의 저수량이 최대 2백억t까지 이를 것으로 추정해 이를 수공에 사용한다면 12∼16시간 만에 수도권이 완전 수몰화 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의 평화의 댐 건설은 평화의 댐 착공 6년여 만인 1993년, 국민을 우롱한 ‘사기극’으로 판명되었다. 당시에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1988년 8월1일 기사에서 한국은 이미 조용히 사그라진 북한의 ‘물폭탄’위협으로부터 서울올림픽을 안전하게 치르기 위해 2억5000만달러를 들여 평화의 댐을 건설하고 있으나, 이는 아마도 불신과 낭비의 사상 최대의 기념비적 공사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1993년에 감사원 감사 결과에 의하면 금강산댐의 저수량은 27.2억t∼59.4억t이 적정치로서 59.4억t이 방류되어도 일부 저지대만이 침수당한다는 것이다. 즉 평화의 댐 건설은 전두환이 불안한 정국을 전환하기 위해 벌인 대국민 사기극였다는 정부차원의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물문화관의 설명도
임남댐
평화의 댐
지금은 2단계 공사까지 모두 마무리되었다.
평화의 댐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 이들은 모두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들마다 추억 한 조각씩 꺼내어 그 시절을 추억하지만 결론은 저마다 다르다.
현재 평화의 댐은 2단계 공사가 완성되었고, 주변에 상설야외공연장·비목공원·수하리 낚시터·비수구미계곡 등이 조성되어 화천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곳에서 평화의 댐과 물 문화관 등을 둘러보고, 인근의 철의 삼각지, 양구 펀치볼 전적비, 고성 통일전망대로 여행을 떠나기에도 좋다.
대국민사기극 덕분에 강원도 화천의 깊은 숲과 물을 만나게 되니 이 또한 삶의 묘미 아닌가.
어떤 길이든 평화의 길로 이끌어내고마는 이 한민족의 저력이 이 화천 평화의 댐 아래로도 모이고 있다.
세계평화의 종
이 세계평화의 종은 세계 각국 분쟁 지역의 탄피를 모아 조성되었다. 이 종을 주조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원광식은 이번 생의 마지막 작품이 평화의 종소리로 울려퍼진다는 것에 큰 감회를 느꼈다고 한다.
현재 조성된 세계평화의 종 용뉴에는 비둘기 날개 1관이 부착되지 않은 채로 완성되었는데, 그 비둘기 날개는 통일이 되는 날, 이곳에 부착되어 완성될 것이라 한다.
세계평화의 종 옆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모여있다. 이곳을 조성할 때의 일화를 들어보면 당시에 화천군의 공무원이 직접 이들 수상자들을 만나 그들의 손을 본뜬 모형을 만들었고, 평화와 화해를 위해 내민 그들의 손을 청동으로 조성하여 이곳에 전시하게 된 것이라 한다.
이곳에는 대한민국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대통령도 있다. 그런데 유독 이곳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공간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 자리에만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이곳을 훼손하는 이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설치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곳 화천의 숲과 물처럼 맑고 청명하게, 남북과 동서 분단의 갈등을 치유할 길은 어디 없을까. 평화의 댐보다 더높이 올려 쌓아진 마음의 댐...생각이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