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佛家思議

청도 운문사

산드륵 2025. 8. 23.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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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호거산 운문사. 『운문사사적』에 의하면, 운문사는 557년 진흥왕 18년에 한 신승神僧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도우道友 10여 인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5갑사를 건립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중에 대작갑사가 현재의 운문사이다. 5갑사 중에서 현재 남아 있는 곳은 대작갑사 운문사와 대비갑사 대비사 두 곳이다.

 

 

운문사 창건에 관해서는 또다른 견해도 있다. 운문사는 560년 신라 진흥왕 21년에 한 신승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608년 진평왕 30년에 원광국사가 제1차 중창하였다는 것이다. 원광국사는 만년에 가슬갑사에 머물며 일생의 좌우명을 묻는 화랑 귀산과 화랑 추항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주었다고 한다. 즉 5갑사가 창건된 시기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해 불교를 매개로 국력을 집중시키고 군비를 정비하던 시기로서, 이 일대의 5갑사는 전략적 요충지의 병참기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원광국사의 '세속오계' 또한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발생하였으며, 이 운문사 일대를 화랑사상의 발원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운문사는 1129년 인조 7년 원응국사가 주석하실 때 전성기를 이루었다. 현재는 운문사 승가대학과 운문사 한문불전대학원이 있어서 승가교육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문불전대학원에서는 경전 과정은 물론, 빨리어, 산스크리트어 교육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부럽기 그지 없으나 비구니 스님들만 입학할 수 있는 곳이다.

 

 

호거산의 산맥을 이어받아 아래로 아래로만 자라며 점점 넓어지는 운문사 처진 소나무. 수령 약 500년, 둘레 약 3m, 높이 10.3m 크기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20여년전 사진을 꺼내보니 그동안 더 넓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소나무는 해마다 삼짇날이 돌아오면 막거리 12말을 먹는다고 하는데 다음에 찾아와보면 포복하며 대웅보전을 향해 기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작갑사가 운문사로 바뀐 것은 보양선사에 의해서이다. 『삼국유사』 권4 의해5 「보양이목寶壤梨木」조에 그 기록이 있다.

 

보양선사는 중국에서 불법을 전수받고 돌아오던 길에 서해의 용왕이 용궁으로 맞아들였다. 선사가 경經을 설하자 용왕은 금란가사를 바치고 아들 이목璃目이 선사를 시봉토록 했다. 용왕이 당부하길 ‘지금 세 나라에 난리가 일어난 것은 불법에 귀의한 군주가 없었기 때문이오. 내 아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 작갑鵲岬에 절을 세우면 몇 년 안에 반드시 어진 군주가 삼국을 평정할 것이오’라고 했다. 돌아와 까치가 땅을 쪼는 곳을 파보니 벽돌이 나와 탑을 세우고 절을 짓고 작갑사鵲岬寺라 했다. 얼마지 않아 태조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고 전답 500결을 바쳤다. 청태4년 정유년(937)에 왕건이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리고 부처님의 신령스런 음덕을 받들었다.

 

 

운문사 만세루. 정면 7칸, 측면 4칸의 ‘ㅡ자형’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으로 약 200여평에 달한다.

 

 

운문사의 전성기였던 1105년 고려 숙종 10년 원응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

 

 

대웅보전. 1994년 건립되었다.

 

 

운문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삼존불과 사대四大보살. 과거 연등불, 현재 석가모니불, 미래 미륵불을 모시고 그 사이사이에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을 협시하였다. 또한 상단 왼쪽에는 신중탱화, 오른쪽에는 53 선지식 탱화를 모셨다.

 

 

녹야원의 아름다운 풍경. 과거7불에서 석가모니불로 이어진다.

 

 

상단 뒤편의 500나한도

 

 

상단 뒤편의 관세음보살 보문품 변상도. 『묘법연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 」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 때에 무진의 보살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미묘한 상 갖추신 세존이여, 이제 다시 저 일을 묻사오니 불자는 어떠한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부릅니까.

미묘한 상 갖추신 세존께서 게송으로 무진의에게 답하시되

곳곳마다 알맞게 응하여서 나타나는 관세음의 모든 행을 잘 들으라.

그 보살의 큰 서원은 바다 같아 셀 수 없이 기나긴 세월동안 천억의 부처님을 모시고 받들면서 크고도 청정한 원 세우나니 내가 이제 그것들을 간략하게 말하리라.

 

그 이름을 듣거나 몸뚱이를 보거나

마음으로 생각함이 헛되지 않으므로

모든 고통 멸하리라.

해치려는 사람에게 떠밀려서

불구덩이 떨어져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불구덩이 변하여서 연못 되고

큰 바다에 표류하여

용과 귀신, 물고기의 난을 만나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센 파도가 삼킬 수가 없으며

수미산의 봉우리에서

사람에게 떠밀려서 떨어져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허공에서 머무르는 해와 같이 될 것이며

악인에게 쫓기어서

금강산에 떨어져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으며

원한 있는 도적 만나

칼을 들고 달려와서 해치고자 하더라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도적들이 마음 돌려 자비롭게 바꿔지며

법률에 잘못 걸려

형벌 받아 죽게 돼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날쌘 칼이 조각조각 끊어지며

감옥 속에 갇혀 있어

손발이 형틀에 묶였어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그것들의 풀림을 받게 되며

저주와 여러 가지 독약으로

몸뚱이를 해치려고 할 때에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본인에게 그 화가 돌아가며

강한 나찰 독룡들과

여러 귀신 만나게 되더라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모두들 해칠 수가 없게 되며

사나운 짐승들이 둘러싸서

이빨과 발톱이 무서워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사방으로 뿔뿔이 달아나며

여러 가지 사나운 독사들이

독기가 불꽃처럼 성하여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그 소리에 스스로 달아나며

구름과 천둥소리 번개치고

큰비와 우박이 쏟아져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무서움이 사라지며

뭇 중생이 곤액 입어

한량없는 고통을 받더라도

관세음의 미묘한 지혜의 힘으로써

세상 고통 구하니라.

신통한 힘 구족하고

지혜 방편 널리 닦아

시방의 여러 국토

빠짐없이 나타나고

가지가지 악한 갈래

지옥 아귀 축생들의

생로병사 모든 고통

점차로 멸해 주며

진관이며 청정관과

넓고도 큰 지혜관과

비관이며 자관이니

우러러 볼지니라.

때가 없어 청정한 빛

지혜 태양 어둠을 제하나니

풍재 화재 능히 이겨

널리 밝게 세상 비춰

대비는 체가 되고 계행은 우레 되며

자비심은 구름 같아

감로의 법비 내려

번뇌 불길 멸해 주며

쟁송으로 관청에 가거나

두려운 진중에 있더라도

관세음을 염하는 그 힘으로

모든 원수 흩어지리.

묘음과 관세음과

범음과 해조음이

세간음보다 뛰어나니

그러므로 항상 생각하여

의심일랑 하지 말라.

관음보살 청정 성인은

고뇌와 죽음과 액운 당해

능히 믿고 의지할 바이니라.

일체의 여러 공덕 두루 갖춰

자비로운 눈으로써 중생들을 바라보며

그 복이 바다처럼 한량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정례해야 하느니라.

 

 

운문사 비로전과 오백전 앞의 동서 삼층석탑

 

 

운문사 동서 삼층탑은 591㎝ 크기로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상층 기단에는 버팀기둥을 새겨 8면으로 구성하고 팔부신중을 각 1구씩 조각해 놓았는데, 이는 통일신라 석탑의 특징이라 한다. 일제강점기에 보수하면서 팔부신중상의 일부가 새로운 석재로 교체되었다. 운문사의 여기저기서 시대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흥미로움이 있다.

 

 

운문사 비로전.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1105년 고려 숙종 10년 원응 국사가 건립하였고, 1653년 조선 효종 4년에 중창하였는데, 운문사 전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현판에는 '대웅보전'이라 되어 있지만 '비로전'이라 해야 찾아갈 수 있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문화재청 등록 당시 '운문사 대웅보전'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에 옛 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지권인을 하고 결가부좌한 운문사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는 '바이로차나Vairocana', 즉 '빛'과 '태양'을 뜻한다. "모든 어둠을 깨트리고 허공에 빛을 비추는 청정" 그것이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함께 모시는' 대적광전, 대광명전'과 달리 비로전은 대부분 비로자나불만 모신다고 한다. 그것 때문인가. 이 운문사 비로전 상단에는 비로자나불만 봉안한 대신에 후불탱화에 법신 비로자나불과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의 설법 장면을 표현한 비로자나삼신불회도를 봉안하였다. 이 후불탱화는 1755년 임한任閑을 수화사로 하여 19명의 화승이 제작한 것이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비로전 법당 대들보에 걸려 있는 반야용선

 

 

극락세계의 구품九品을 표현하는 9개의 보령을 달아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7개만 남아있다.

 

 

반야용선은 영가단에서 행해지는 의례를 위한 장엄구의 하나였다.

 

 

용이 반야용선에 올라탄 영가를 태우고 극락으로 간다고 해서 '용가龍駕'라고도 한다.

 

 

간절함이 시각화되면 예술이 되는가

 

 

『대장일람집』에 의하면 "경전을 받아 지녀서 4구를 취하고 성인과의 훌륭한 인연을 지어서 무위無爲의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면 반드시 반야선般若船을 타야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로전의 청의동자 또한 반야선에 타기 위해 끝까지 밧줄을 붙들고 있다.

 

 

비로전 후불벽에는 달마대사와 관세음보살 벽화로 그려져 있다. 1653년에서 1718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후불벽 뒷벽에 관음보살도가 그려져 있는 예는 다른 사찰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두 성인이 한 벽면에 함께 표현되어 있는 것은 이곳 운문사 비로전 벽화가 유일하다고 한다.

 

 

운문사 작압전. 운문사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보양국사가 전탑형식으로 초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현재의 목탑형식으로 재건되었다. 내부에는 보물 제 317호 석조여래좌상과 318호 사천왕 석주를 봉안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한 신승神僧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떼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수행하여 큰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새를 보고 이른 터에는 무너진 석탑이 있어서, 무너져 있는 석조물로 다시 탑을 쌓으니 파편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것을 보고 좋은 징조로 여겼다. 신승神僧은 깨달음을 얻은 뒤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남쪽에 천문갑사·서쪽에 대비갑사·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다.

 

 

작압전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 모두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작압전 석조석가여래좌상.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다. 부처님을 봉안한 좌대와 광배가 모두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

 

 

운문사 사천왕 석주.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 이 작압전은 석탑이 있었던 곳에 세워진 전각이다. 따라서 이 사천왕 석주는 탑의 기단부를 장식하기 위해 조각되었던 것으로도 추정한다. 그러나 석주 네 기가 각각의 높이가 달라서 그 용도에 대해 궁금함만 더할 뿐이다.

 

 

운문사 관음전은 1105년 원응국사가 중창한 것이라고 전하나, 건축 양식으로 볼 때 조선 초기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에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하고 수월관음도와 신중탱화를 봉안하였다.

 

 

관음전의 관세음보살. 위엄이 넘치는 상호가 굳은 믿음을 준다. 후불탱화는 1816년에 제작한 수월관음도이다.

 

 

가히 천년 세월이 한 공간 한 찰라에 함께 하는 운문사. 가을에는 더욱 아름답겠지. 겨울에도 보고싶으면 봄에나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운문雲門이야 늘 열려 있지만 붙잡을 수도 없음에 기약할 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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