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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방선문

by 산드륵 200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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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로 들어가는 길목, 방선문

 

 

훨훨 새처럼 날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은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저 돌콩들처럼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비상하고 싶던 꿈 대신

선계로 가는 길목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제주시 오라동 정실 교도소 입구에서 약 1.1km 정도 들어간 곳에

영주십경의 하나로 불리는

영구춘화의 선경, 방선문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신선이 방문하는 문이라 하여 방선문이라 불렸던 곳.

저 바위 밑으로 걸어 들어가면 또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방선문입니다.

과거 제주를 찾았던 시인묵객들은

이 계곡을 찾아 바위마다 자신들의 감상을 휘갈겨 놓았습니다.

계곡 곳곳마다 마애명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중 '방선문'이라는 애각(涯刻)이 바로 이 바위 안쪽 천정에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다음에 꼭 올려 드릴께요.

수많은 바위들 중에서 굳이 이곳을 택해 방선문이라 새긴 것을 보면

풍류에도 고수가 있나 봅니다.
판소리 12마당 중의 하나인 배비장전의 배경이 바로 이곳 방선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목사일행과 봄나들이 나왔던 배비장이 제주 기생 애랑이에게 꼬임을 당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전한답니다.

풍류를 즐기는

그들을 바라보던 제주 민초들의 마음을

애랑이에게서 엿보게 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요?  


 

방선문을 지나니

커다란 바위가 계곡 가운데 우뚝 서 있었습니다.

이 바위를 중심으로 계곡이 양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마애명은 이 바위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이 사진이 바로 그 마애명인데요.

어떠세요.

풍류를 즐기다 못해

바위에 새겨

자신의 자취를 길이길이 남기고자 한 것을 보면

풍류에 대한 그들만의 자부심이 대단했나 봅니다.

 


 

계곡 오른쪽으로는 세 개의 소(沼)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금은 물도 흐르지 않고,

영구춘화라는 명성에 걸맞는 진달래와 철쭉은 

모두 자취를 감췄지만

그야말로 그 붉디붉은 꽃들이

이 맑은 소에 제 모습을 자랑하던 예전에는

시인묵객들이 앞다투어

아름다운 운율에 자신의 마음을 실어보기도 했으리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백록담에는 매년 복날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멱을 감았답니다.

이때 한라산 신선은 방선문으로 자리를 피해서

선녀들이 마음놓고 목욕할 수 있도록 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복(伏)날 한라산 신선이 미처 자리를 피하지 못해

선녀들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게 되었답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옥황상제가 격노하여

한라산 신선을 하얀 사슴으로 바꿔버렸답니다.

그래서 백록담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라네요. 

그런데 사진 위로 희미하게 다리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보이세요?

저 다리는 바로 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들어선

오라골프장을 동서로 연결하는 시멘트 다리입니다.

뭐라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방선문은 '환선대'라고도 불리는데요.

사진에 보이는 마애각이 바로 '환선대'입니다.

1779년 정조 3년, 당시 제주 목사를 지냈던 김영수의 친필인데요.

신선을 찾아온 문, 즉 방선문(訪仙門) 에 들어섰으나,

신선은 찾을 수 없으니 이에 신선을 불러본다 하여

환선문(喚仙門)이라 새겼다는군요.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환선문이라는 애각 옆으로는

다음과 같은 오언율시도 새겨져 있습니다.

 

萬壑乾坤大  깊은 골짜기는 천지의 위대함이요

石門日月閑  견고한 돌문은 해와 달의 한가로움이라

曾云無特地  일찍이 일컫기를 배필없는 삼신인의 땅

其箇有神山  그것은 바로 신령스런 땅이 있음이라

花老已春冬  꽃 시들어 봄은 어느새 겨울로 바뀌어도

岩賞太古歡  바위는 여전히 태고의 기쁨 지닌 채 있다네

戞然鳴發意  알연한 학 울음소리 품은 뜻 잘 울려주니

知是在仙間  이런 이치 깨달음 선계의 경지 들어섰음이라

 


 

이외에도 수많은 마애명들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목사에서 군관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찾아 선경을 즐겼는데요.

예전 이 방선문 옆으로

한라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었다 하니

제주를 찾은 관리들이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찬탄해 마지 않았던 이유가

혹시 이곳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애명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혹시 나도 한번 새겨볼까 생각하신다면

그냥 웃고 말지요.

 

잠시 쉬시라고

올렸습니다.

 

세상사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는 몸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선계를 엿보며

잠시 쉬시라고....

 

어떠세요.

잠깐 시름 놓으셨나요.

 

아니시라구요?

 

그렇다면

저 검버섯 핀 바위 틈에 피어난

연보라빛 꽃을

오늘 이곳을 방문해 주신

님께 바칩니다.

 

소박한 저만의 풍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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