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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삼별초(1)

by 산드륵 200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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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제주 곳곳에는 아직도 삼별초의 흔적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삼별초의 발자취를 따라 길을 떠나 보았습니다.

비와 바람이 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고려 조정의 개경 환도에 저항하여 일어선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로 내려와 저항선을 구축하였습니다.

이때 고려 조정에서는 진도 공격에 앞서,

삼별초가 탐라로 후퇴할 경우를 대비해서

1270년 원종 11년 영암부사 김수에게

미리 탐라로 들어가 수비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진도의 삼별초 측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별장 이문경에게 탐라를 점령하도록 합니다.

이문경은 관군이 들어온 2개월 뒤인 11월 명월포로 상륙하였습니다.  

이 명월포가 어디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옹포 방파제의 모습인데

저는 아마 이 근처가 아닌가 추정해 보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섬은 당시 관군이 머물렀다는 비양도입니다.

 

화북의 환해장성입니다.

바다를 둘러 끝도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1270년 방위군 2백명을 거느리고 들어온 영암부사 김수는

삼별초의 접근을 막기 위해 제주 도민을 동원하여

이와 같은 해안 저지선을 구축해놓았답니다.

 


화북의 별도천입니다. 

이 별도천의 옛이름은 송담천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영암부사 김수와 고여림 장군이 사망하고

삼별초군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오늘날 이곳이 별도천(別刀川)으로 불리게 된 것도

모두 이 삼별초와의 전투와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별도천의 끝자락입니다.

별도봉도 보이네요.

별도천이 바다로 이어지는 이곳의 마을 이름은 곤을동입니다.

언제나 물이 고여있어 곤을동이라 불리었다는 이곳.

삼별초와의 싸움 때도 피로 벌겋게 물들었겠지만

제주 4.3 때 역시 다시 무고한 주민들이 학살당하면서

고운 물 대신 핏물이 고였던 곳입니다.


화북포구에 잠깐 들렀습니다.

이곳은 삼별초군을 진압하기 위해 관군들이 입도(入島)했던 곳이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조천포구와 함께 제주의 관문이 되었던 포구로

김정희, 최익현 등도 이곳을 거쳤다는

사연많은 곳입니다.  

 

화북포구 앞의 화북진성입니다.

지금은 성의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화북포구 앞 해신사입니다.

이곳의 풍랑이 세어 고기잡이를 나갔던 어부들이 많이 죽게되자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던 곳이랍니다.

 


화북을 떠나 오후에는 애월읍 동귀 포구에 도착하였습니다.

탐라로 들어온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은

고성리 항파두리에 성을 쌓고 그들만의 망명정부를 수립하게 되는데요.

그때 김통정 장군은

바로 이 귀일리의 바닷가 마을인 동귀 포구에 군항(軍港)을 설치하게 됩니다.

이곳이 지금도 군항포(군항동)라 불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 합니다.

지금은 방파제를 새로 건설하면서

옛 포구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동귀포구 입구입니다.

사진 속 전봇대는 도대불이 있던 자리입니다.

그 도대불에 의지하여 크고 작은 배들이 오고갔고

일제시대에는 감자를 실고 부산까지 가는 무역선의 뱃길도 지켜주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꼭 그 자리에 전봇대가 들어서 있습니다.

 

파군봉(破軍峯)입니다.

제주시에서 동귀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

한라산 쪽으로 바라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동귀 포구와 일직선상으로 놓여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고성리 항파두성에서 3년간 저항하던 삼별초군은

1273년 김방경 장군이 이끄는 여몽연합군을 만나

이곳에서 대파 당합니다.

삼별초군의 운명을 바꿔놓은 곳이죠.



파군봉 입구에 있는 안내문입니다.

진도에서 탐라로 들어와

이곳에서 운명의 순간을 가른 그들!

죽음의 돛배를 타고 이곳까지 흘러온

삼별초군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삼별초의 항쟁은 일종의 신분해방운동입니다.

당시 삼별초군을 형성했던 군사들의 대부분은

농민이나 천민 출신들이었는데

그래서 어느 유학자는 이 삼별초군을 '불량배의 무리'라고도 표현하였죠.

하급관리로서 삼별초를 이끌게 된 김통정 장군은

이들 백성들에게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자유의지로 움직일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존을 위한 혁명 속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든 것은 아닐까요?

 

파군봉을 내려오다가 부처물 마을을 만났습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부터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 하는데

어느 땐가 사라졌고 마을 지명만 여지껏 남아

지금도 부처물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부처물교라는 다리가 보이시죠.

다리 너머로 보이는 밭에는 원래1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이었는데

4.3때 토벌대에 의해 주민들이 학살 당하고,

지금껏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부처물교 바로 앞에 있는 부처물입니다.

바위 밑으로 더 가면

지금도 세차게 물이 흐르는데

누군가 물길을 막아놓았더라구요.

이곳에는 불상도 세워져 있었는데

4.3 당시 마을이 피해를 입을 때 사라졌답니다.

다른 주민의 말에 의하면

파군봉 안의 월영사 근처에 있었는데

그것마저 지금 사라졌다네요.


비도 촉촉히 오고 해서

삼별초의 자취를 따라

다녀왔습니다.

**^^**

잠깐 산책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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