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어린 누이가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 누이는 없지만 해마다 이때쯤 봉숭아 저 꽃을 보면
꽃물마냥 고운 꿈을 꾸던 어린 누이가 생각나곤 했습니다.
제게 항상 그리움과 같은 이름으로 기억되던 봉숭아꽃
그러나 오늘 이곳 너분숭이 애기무덤가에서
제 봉숭아꽃의 기억은 바뀌고 말았습니다.
학살당한 애기들의 무덤터 그곳에서 돌보는 이없이
홀로 피고 지는 봉숭아꽃
너분숭이 애기무덤 터
이곳에는 한품에 안길만한 애기무덤들 20여기 정도가
조그만 공터 안에 모여 있습니다.
함덕을 지나 북촌에 들어서면(북촌초등학교 서쪽100m지점)
길 왼편에 사진과 같은 표지석이 보입니다.
이름하여 너분숭이 쉼터.
원래 이곳은 북촌과 함덕 마을 사람들이
밭일을 하고 돌아가다 쉬던 곳이었습니다.
넓은 돌이 깔려 있어서 지친 걸음을 쉬고 가기에 좋았던 이곳.
아주 먼 옛날부터 이곳은 일찍 죽은 애기들을 묻어 두던 곳이기는 했습니다.
잊지말고 오며가며 쓰다듬어 주라고 밭일을 끝내고 쉬어가던 쉼터에
애기들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2001년 북제주군에서 쉼터를 조성할 때
4.3사건 당시 학살당한 후 암매장되어 있던 애기들의 유골이 드러났습니다.
1948년 1월 17일 함덕 주둔 2연대 3대대 군인들은
북촌리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모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동쪽 당팟과 이곳 너분숭이 등에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너분숭이 쉼터 바로 옆의 옴팡밭입니다.
이곳에서도 그날 대량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밭 가운데 작은 수풀... 그렇습니다.
애기의 무덤입니다.
대학살 이후
옴팡밭 바로 옆 너분숭이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버려졌습니다.
훗날 연고자가 있는 유해들은 다른 곳으로 이장되어 갔지만
찾아갈 가족조차 없는 애기들의 유해는 암매장된 채 버려졌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습니다.
애기들이 살아있다 해도 백발 노인이 다 되었을 세월인데
봉숭아꽃은 어느 영혼의 손톱을 물들이려는지 여전히 다투어 피어납니다.
애기무덤들입니다.
돌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이곳에선 발을 잘못 디디면
애기들의 무덤을 밟게 되고
또 발을 잘못 디디면
역사의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바닥의 돌들도 이유도 모른 채 사지에 내몰렸던 그 어린 애기들의 고통처럼
쩍쩍 갈라져 있습니다.
너분숭이 쉼터 한 가운데 연지에 연꽃이 피었습니다.
이곳에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어둠 속의 모든 이들에게 빛을 주는 공간입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훔!
애기무덤 터의 연꽃
도대체 어디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할 지 모를 너분숭이 애기무덤 터에서
오늘 제가 만난 부처도 울고난 직후였습니다.
너분숭이 앞으로 무심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봅니다.
모르면 그저 아름답다고 말해도 좋으나
그러나 사랑한다면
이제는 그 고통스런 기억까지도 모두 껴안으라고
저 무심한 바다는 말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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