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원 스님 이야기
잃었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큰 이야기
꽃방석 펴놓고함께 듣습니다.
서귀포시 영남동
1948년 11월 28일 국방경비대에 의해 전소되어 사라진 마을
천백도로와 제2산록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제2 산록도로를 따라 서귀포 방면으로 달리다가
아르도 서귀포 펜션 신축공사현장이라 써 있는 표지판을 따라
오른편으로 난 시멘트 길을 200여 미터 달리면
눈 앞에 환하게 펼쳐지는 영남 마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주 4.3이 끝나고 난 후
홀로 이 고요한 마을을 지키던 전씨 할아버지가 최근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나서
요즘 이 영남마을의 아침과 저녁을 매일 마주하는 이들은
전씨 할아버지 막내아들 내외와
4년전 이곳에 터를 마련하신 무주선원의 한원 스님이 전부입니다.
한원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처음 제주에 도착했을 때묵직한 그 무엇이 마음에 맺히는 게
왜 그러는지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걸 알아내려고 혼자 도서관에 다니며 제주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지.
그리고 4.3을 알았어.
그날 이후 이제는 영남마을 주민이 되어버린 한원스님
우주의 한 떨기 꽃으로 머무름없이 머무르길 바라는 무주선원
조그만 법당은 정갈합니다.
4.3의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영남마을이기에
모두가 하나되는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스님의 말씀은 더더욱 크게 울립니다.
젊은 전씨 내외가 하루 12시간 밭농사를 하며 짧은 해를 보내는 배추밭.
밭담을 둘러친 노루망도 길을 따라 죽 둘러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농촌마을이나 다름없는이 영남마을의 풍경을 보고
4.3 유적 답사에 나섰던 이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당시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시간은 불타오르던 그날 그곳에서 멈춘 채
정지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한원스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잃어버린 마을이라면 다시 찾아라!
요정같은 아이들이 와서 그날 그 장소에서 숨쉬며
다시는 평화를 잃어버려선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라!
비통한 그날의 기억에만 멈추어 4.3을 다시 섬 안에 유폐시키려 하지 마라!
돌이켜 보면이 영남마을은 4.3의 기억만 간직하고 있는 곳은 아닙니다.
김두삼 |
김항률 |
박경흡 |
이자춘 |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 당시에는 이 마을 주민 25여명이
김두삼, 김항률, 박경흡, 이자춘 등의 열사들과 더불어항일 투쟁에 나서기도 했었습니다.
광주감옥 목포 분소에서 옥사한 김두삼 열사는 당시 나이 25세, 김항률 29세, 박경흡 44세, 이자춘 43세
이곳은 처음부터 잃어버린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 이곳은 다시 살길 원합니다.
우리들이 이곳을 외면하고 있던 사이에
마을 입구에 들어설 예정이던 펜션 공사는
이 마을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폐허가 된 채 버려져 있습니다.
현재 이 영남마을 토지의 70%는 투기 목적으로 이 땅을 사들인 외지인들인데
그들에게 이 땅을 팔아넘긴 것도 우리 제주도민들입니다.
마을 입구의 우물터는
펜션 공사 당시 지반을 흔들어 놓아서 그 이후로 물줄기가 끊겼습니다.
이 물줄기를 다시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복잡한 그 마음을 아셨는지 무주선원에서 돌아서 나올 때
뒷통수에 대고 스님이 한 마디 던지셨습니다.
"그 생각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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