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같은
그 모든 근심을 털어 버리고
혜일 선사를 따라 걷습니다.
무수천 자락을 따라 걷습니다.
제주시 광령리 무수천
서천암 폐사지에 세워진
혜일 스님의 시비.
시비 오른편
한 계단 내려선 곳이
혜일스님이 머무시던
고려시대 사찰 서천암 자리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시대 시승으로
제주 삼기로도 널리 알려졌던
혜일스님의
묘련사, 법화사, 보문사
그리고 이곳 서천암을 노래가 시가 실려 있는데
그중 서천암 시는
이곳 무수천 8경 중
영구연, 용안굴, 매바위 등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무숲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매바위 옆에 서 있는
서천암 자리에
이 마을 광령리 사람들이
웅지원이라 이름하여 새겨놓았습니다.
옛적에는
절경이 있어
시를 던졌지만
지금은
시가 있어
그 절경이 더욱 빛을 더하는 곳
한라의 높이는 몇 길이던가
정상의 웅덩이는 신비로운 못
물결이 북으로 흐르니
저 아래 조공천을 이루었네
내걸린 폭포는 물거품 날리며
구슬이 구르듯 내달려
여울에서 많은 돌과 부딪히고
간혹 웅덩이에 고이기도 해.
서천암 시에서
처음으로 노래한
영구연!
쇠뼈 99개를 넣어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이곳 영구연은
예로부터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마을 사람들도 쉽게 접근하지 않았다 하는데
지금은 무수천 다리 아래 짓눌려
그 신비로움을 잃은 듯 합니다.
그러나
꽃을 보며
무수천 휴게소 옆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100여미터를 가면
천조식당 옆에 계곡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계곡 아래로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비로소 이곳의 절경을 이해하게 됩니다.
계곡 오른쪽이
용눈이 굴
서늘한 가을
달 고운 저녁이면
바위를 쓸어
차 잔치를 벌였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오래 서성이고 싶은 것은
혜일 선사만이 아닌 듯한데
그 고운 날개가
쉴 곳은 다름 아닌
매바위입니다.
매바위!
서천암 시비가 서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좀더 내려가서 계곡으로 들어가면
매바위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꽃잎 대신
낙엽 띄운
차맛은
근심없는 그 맛입니다.
곳곳에
맑고 차가운 차가
한 가득 담겨있습니다.
물이 좋은
이곳 서천암 인근
행중이물에서도
송송 맑은 소리가 납니다.
서천암으로 가는 길에서도
서천암에서 나와 사라교를 향하는 길에서도
날개를 펴지 않은 새는
여전히 봄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무수천 제1경으로 이름 붙여진
사라교 근처의 보광천입니다.
서천암에서 좀더 북쪽으로 내려가서
사라교 옆으로 난 시멘트 길로 접어들면
보광천의 아름다움이
산책님들의 발길을 붙들 것입니다.
그때
앞서간 혜일 선사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이곳에서
아주 천천히
비젖은 해를 기다려도 좋을 듯 합니다.
비젖은 꽃잎과 노니고도
그리고도
시간이 남으신다면
광령 마을에 있는
향림사를 찾아보세요.
향림사의 절물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고려시대 옛 절터였던
이곳 향림사 역시
혜일 스님의 자취가 묻은 곳으로
믿고 있습니다.
향림사에는 지금
작약이 곱고
등꽃의 향기도 진하디 진한데
저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지
기와 사진 한 장만 남기고
다른 것은 모두 놓치고 말았습니다.
혜일스님 자취도 그렇게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코끝엔
등꽃의 향기가
여전히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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