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깨비로 와서
오십 여년 온갖 미친 짓
모든 영욕 다 겪고
이제 그 탈을 벗는다
보우대사의 열반송입니다.
1565년 문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해 6월 제주로 유배 되어
목사 변협에게 장살되기까지
보우대사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시간은
아주 짧았습니다.
그 보우대사를 기리며
제주의 향토사가인
김태능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만일 목사 변협의 학대와 폭력에
비참한 장살을 당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우연히도 일세의 고승을 맞이했던
절해 고도 제주의 불교계는 개안되어
자비를 모르던 토착주민들에게
보살이 상징하는
'구원의 생명'을 전하여 주었을 것이요
그 전통과 영향도
후세에까지 길이 남았을 것이어늘
그의 참혹한 순교는
제주로서도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가혹한 조선조의 배불정책 속에서
선교 양종을 일으켜 세우는 등
조선 불교 중흥의 기틀을 세웠던
허응 보우 대사
그 보우선사가
장살된 곳으로 알려진
애월읍 금성리 어도봉으로 가는 길목에는
깊은 향기만
짧은 인연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도봉.
마을에선
도노매, 도래메라는
옛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곳입니다.
이 오름의 남서쪽에 자리한 도림사.
예로부터
이 사찰 윗쪽 일대는
고대 절터가 있었던 곳이라고 구전되고 있는데
보우 선사의 적거지 역시
이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팽나무가
또다시 새순을 틔워내고 있는
이 도림사는
만공 오춘송 스님께서 창건한 법화종 사찰입니다.
최청산 스님을 은사로 모신
만허스님, 혜관스님, 혜화 스님 등 7 분이
조국 해방과 불교 혁신을 위해
법화동문회를 발족한 것이
제주 법화종의 시초인데
그중 만공 스님이 머무시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현재 이곳 도림사 입구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사찰을 이어갈 스님이 없어
관리를 할 수 없자
몇 해 전
만공스님의 출가 혈육께서
이곳으로 돌아와 지키고는 있지만
스스로 철조망을 친
스님께서는
혼자 공부하기를 더 원하신다고 합니다.
담벼락을 타고 넘어온
낯선 이에게
철조망을 먼저 보여주시던 스님께서는
그러나 돌아서 갈 때쯤이 되자
여린 마음을 감추지 못하시고
'신 거 좋아해?' 하시며
도량 안의 유자를 한아름 따 안겨주셨습니다.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도림사 경내의
절새미물입니다.
작은 사찰의 규모에 비해
샘물의 규모는 꽤 커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마을 주민들도
이곳 물을
식수로 함께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보우 스님께서
이 물가에서
제 얼굴을 들여다 보실 때도
물가의 저 꽃이 지켜보고 계셨을까요.
목사 변협은
경기도 과천에서 현감으로 있을 적에
보우 스님께 당한 개인적 감정을 잊지 않고 있다가
보우 스님이 제주로 귀양을 오게 되자
무참히 장살하고 말았습니다.
지워질 듯
지워질 듯
아스라이 펼쳐진
비양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50이란 한창 나이에
꿈을 접은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짧은 인연
그러나
오래 지워지지 않는
그 향기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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