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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와 3

현의합장묘의 정월의 신부

by 산드륵 2008.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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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부터인가 꽃을 꺾지 않게 되었다. 

똑 하고 꽃의 목을 꺾는내 손의 무정함에 스스로 질려서였다. 

 

또다른 이유로 꽃을 꺾지 못하는 사람...1948년 정월의 아리따웠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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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불태우며 돌아다니던 토벌대에게 1948년 그해 정월의 신부는 신랑을 잃었다. 

그리고 산속에 숨어 옹달샘을 떠 먹고 울음을 집어 삼킬 때 총알을 피해 돌아누웠던 그 뱃속의 아기가 올해 59세.

무정한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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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읍 의귀초등학교 이곳이었다. 

1948년 4.3 당시 국방경비대 2연대 1대대 2중대 군인들이 주둔하여

남원읍 일대 의귀, 한남, 수망 등 중산간 주민들을 토벌하던 전초기지. 

48년 11월 7일 다른 마을보다 일찍 시작된 토벌작전에서 끝내 의귀리 300명, 수망리 100명, 한남리 100여명 등의

사람이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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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남원읍 일대에 토벌 작전이 펼쳐지자

산으로 들어갔던 무장대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내습했다가 토벌대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어 무장대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마을 주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감행되었다.

1949년 1월 10일 1차 집단학살, 1월 12일 2차 집단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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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의 신부는 말한다. 차라리 이유라도 있었으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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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없이 죽어간 중산간 사람들은그해 봄까지 그대로 버려졌다.

그리고 몇 달 후에야 개탄물 동쪽 의귀리 765-7번지 일대 공터로 옮겨졌다. 

세 개의 구덩이를 파고 듬북처럼 엉긴 시신들을 한꺼번에 묻었다. 

그리고 현의합장묘라 이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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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넋들이 잠든 현의합장묘 앞에서 그 해의 신부는 다시 말한다. 

차라리 죄라도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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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의합장묘역이 도로 공사로 인해 더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게 되자

2002년 6월 새롭게 조성하여 옮긴 4.3 위령공원 현의합장묘. 

수망리 4거리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녹주맥반석 가마찜질방 가는 길로 들어서

찜질방 맞은편 시멘트 길로 들어서면 나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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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일들을 새까만 대리석에 송곳으로 긁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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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을 위해 이제는 서로 손을 잡으라 다들 말하지만

가만가만 흔들리는 마음까지 탓할 용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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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아득한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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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들은 마음을 닫아 걸었고

젊은이들은 관심이 없다는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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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구덩이가 세 개의 봉분으로 솟았지만 갈 길은 아직 요원한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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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묘비  

죽은 날을 알 수 없어 생일날에 제사를 지내는 이 마을 사람들

떨리는 열 손가락으로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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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비석에 참배하고 들녁의 꽃으로 헌화하였어도

4.3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속냉이골 

의귀 4거리에서 의귀 초등학교를 지나 서귀포 방향으로 달리다가

모살물교를 지나치기 직전에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 첫번째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약 400여 미터를 지나면 농로 바로 옆에그냥 버려진 덤불숲이 나온다.

 

 

 

 

이곳이 의귀 사건 당시 희생된 무장대들의 시신이 버려져 있는 곳

 

 

 

 

도법 스님께서 먼저 다녀가셨다.

 

 

 

 

이곳에 길을 물어 물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미꽃보다 더 붉은
그날 그 청년들의 그 가슴 위에 기어이 꽃을 꺾어 던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정한 세월은 여전히 또 그렇게 흐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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