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에는 명도오름
샘찾는 이들에겐 조리세미 오름
늙은이들의 기억엔 형과 아우같다 하여 성제봉
그 오름이 품고 있는
명도암 마을
그늘 너머 햇살이 좋아
따라 걸어가 봤습니다.
명도암에 살아서
훗날 명도암 선생이라 불리게 되는 김진용의 비석이
오름 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효종 9년 숙녕전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귀향하여 이곳 명도암으로 들어온 김진용은
다음해인 1659년 제주목사 이회에게 건의하여
현재의 오현단 터에 장수당을 세웠는데
그 장수당은 훗날 귤림서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마을 표석에는
김진용이 절터 옆에 집을 짓고 살았다라는
제주읍지의 옛 기록을 새겨놓았는데
그 기록이 사실이라면
명종 곽흘 목사 때부터 시작된 제주불교탄압이
효종 때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김진용의 비가 서있는 곳에서
조금 더 오름 안으로 올라가면
조래천, 혹은 명도샘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 목을 축이고
쌀을 씻고
그 다음 샘에서 빨래를 하는 3단계 작업이 끝나면
마지막 샘에서
망아지, 송아지와 새들이
타는 목을 적십니다.
사람과 짐승이
다투지 않고도 살 수 있었던 옛날 이야기...
그 온기어린 옛날 이야기를 걷어내버린
제주 4.3은
그래서 더
막막한 겨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제주신보 1952년 9월 30일
금지구역 출입말라 / 위반자는 통비(通匪)로 인정할 터 / 윤(尹)경찰국장 일반에 요망
부민(部民)의 도내 산간 출입금지에 대하여서는
선반(先般) 이래 누차에 걸쳐서 공고
또는 일선 경찰지서소(警察支署所)를 통하여 고지시킨 바이다.
...
향후 만일 산간 출입금지구역내에
무단히 출입하는 위반자가 유(有)할 시는
그를 통비자로 인정하여 단호한 처단을 불사할 것이니
차지(此旨)를 거듭 일반에게 주의를 환기하여 두는 바이다.
그런데 출입금지 구역이라 함은 다음과 같다.
△제주읍 관내 : 명도암(明道岩)-영평(寧坪)-죽성(竹城)-금악(琴岳)-유신동(有信洞)을 연(連)하는 선
제주 4.3 당시의 신문에 고지된 바대로
명도암 마을은 통행금지 구역이란 굵은 선이 그어져
마을 전체가 불바다로 변합니다.
따스한 햇살
눈앞에 두고 오래 보려니
마음 깊이 꾹꾹 눌러둔 이야기가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바람은 차도
햇살이 그지 없이 고운 날
그런 날
....
그런 날을
다시 기약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