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967 화랑마을 폐사지 화랑마을 6.25전쟁이 끝난 후 오갈데 없는 다친 병사들이 모여 살던 곳 해안동 화랑마을 이 화랑마을 깊숙한 품에는 그보다 더 오래전에 잊혀져간 폐사지가 있다. 허리굽혀 모종을 심을 때마다 속칭 '절터왓'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기와며 자기편이 쏟아져 나오면 누군가 살다 갔구나 했던 곳 인적 드믄 숲 속에 잘 단장된 '절물'. 이곳에 잊혀진 옛 이야기는 이제 숨은 그림 절터에서 나온 기단석들. 절터의 주춧돌들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이 기단석들은 이곳 절물을 정비할 때 옮겨와서 오늘날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절물은 여전히 곱지만 마시는 사람이 없으니 지금은 농업용수로 끌어다 쓸 뿐. 찾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맑게 노는 그 뜻이 좋아 시린 손 한 번 내밀어 본다. 절왓 곳곳에서 발견되는 기와편들 그러나 올 초에 .. 2008. 2. 29. 명도암 고지도에는 명도오름 샘찾는 이들에겐 조리세미 오름 늙은이들의 기억엔 형과 아우같다 하여 성제봉 그 오름이 품고 있는 명도암 마을 그늘 너머 햇살이 좋아 따라 걸어가 봤습니다. 명도암에 살아서 훗날 명도암 선생이라 불리게 되는 김진용의 비석이 오름 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효종 9년 숙녕.. 2008. 2. 29. 하도리 철새도래지 이러고 있습니다. 겨울 바다 그 바다를 꿈으로 부르나 봅니다. 꿈으로 와줘서 고마운 겨울 바다 종종거리며 걷기 좋은 오후의 풍경입니다. 그런 날 겨울 바람에 지친 날개를 접고 쉬는 그런 날 그런 날이 와도 스스로를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합니다. 할미는 무릎에 차는 추위를 건너 바다 한 가운데.. 2008. 2. 29. 리생이 곰궤 59년만이라 합니다. 곰궤를 다시 찾은 건... 해안동 리생이의 곰궤를 찾아가는 길에서 어쩔 수 없는 인연으로 다가오신 홍씨 어르신. 1948년 당시 16세 그러나 그날을 피해가듯 59년 동안 이곳을 피해 다니셨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산책님들을 위해아직도 피비린내가 날 것만 같다는 그곳으로 발길을 옮겨주신 홍씨 어르신께 감사드리며 산책님들과 함께 걷습니다. 1948년 산간마을 리생이에 풍문 하나가 들려왔습니다. 제주 성에 난리가 났다 그러나 풍문에서 멀리 떨어진 이 해안동 리생이 사람들은 산 속에서 탈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1948년 남한 단독선거를 주장하는 이승만 정권의 5.10 선거 강행이 다가오면서 인근 도평, 외도 등 해안가 마을 사람들이 이 리생이 남쪽 붉은 덩어리로 피신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2008. 2. 29. 어우눌 어우눌을 찾으려 했습니다. 몇 번이나 지도를 확인하며 수차례 마을의 흔적을 찾았지만 그러나 어우눌은 없었습니다. 어우눌 대신 조설대를 찾았습니다. 저 비석 바로 아래쪽에 어우눌에 살던 이응호 선생 등이 조선의 국치를 설욕하리라며 새겨넣은 조설대가 있습니다. 조설대(朝雪臺)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 국상이 있을 때 선비들이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해 향을 피우고 제를 올리던 곳이었는데 이응호 등이 집의계를 조직하고 모임을 가진 이후 조설대로 불려져 왔습니다. 그러다가 귤암 이기온 선생 유허지에 있던 문연사가 도로 확장으로 갈 곳이 없게 되자 이곳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릅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글을 음각한 '귤암' 바위 귤암 이기온은 제주에 유배왔던 최익현 밑에서 수학하였는데 그 이기온의 문하생들이 집의계 인사들.. 2008. 2. 29. 막걸리 생각 가을을 보니 알 것 같습니다. 지난 여름 이 숲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렇다면 가을은 지난 여름과 동의어? 아닙죠. 이번엔 속지 않습니다. 무자성(無自性)이라는데 인연법만이 여여할 뿐이라는데 너가 그렇다면 나도 그러할진대! 그런데도 왜 자꾸 발은 헛짚고 뒹굴어쌌나! 핑계는 있지 산 아래서 풍.. 2008. 2. 29. 이전 1 ··· 137 138 139 140 141 142 143 ··· 1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