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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있길래

심양 북릉

by 산드륵 201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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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심양의 북릉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와 왕비의 무덤인 소릉(昭陵)이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북릉공원 안내도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

우리에게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아주 낯설지많은 않은 인물이다.

 

 

홍타이지는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의 여덟번째 아들로서

권력 승계에 승리한 이후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황제를 칭했으며

조선과 몽골을 공략하여

중원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1618년

남만주 일대에서 명나라와 후금이 충돌할 당시

명나라는 조선에 지원병을 요구했고

후금은 조선에게 지원병을 파견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에 광해군은

도원수 강홍립에게 상황을 보면서 투항할 것을 지시했고

1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간 강홍립은

조선의 출병은 명의 강요에 따른 것으로 후금과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투항했다.

결국 강홍립과 김경서 등 2명의 지휘관만 후금에 억류되고

군사들은 풀려나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인조가 반정을 통해 집권하면서

친명배금 정책으로 기울었고

이에 홍타이지는

1627년 3월 1일 정묘년 아민에게 군사 3만을 주어

조선을 치게 하였으니 이것이 정묘호란이다.

이후 다시 1636년 12월 10일

홍타이지가 직접 12만의 대군을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병자호란이 발생한다. 

 

 

홍타이지는 

삼전도에서 인조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행하게 하여 치욕을 안겼으며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삼학사 및 조선 백성 60만명을 인질로 잡아갔다.

이곳은 조선 백성들의 노역으로 만들어진 북릉의 호수.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인들은

수절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환향녀라는 낙인이 찍혔다.

환향녀들의 남편들은 집단으로 이혼을 요구했으니

그들이 소위 화냥년이다.

백성을 버린 나라.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역사는 역사대로 흐르고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하루를 흘려 보낸다.

 

 

낯익은 제기차기에 함께 하는 관광객들.

 

 

화표주.

황제를 상징하는 돌기둥이다.

 

 

공원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노인.

 

 

한국

 

 

태극문양까지는 그런가보다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현대자동차 마크를 그린다.

뭥미?

 

 

붓을 떼지 않고

오륜기를 한번에 그리며

바닥에 낙서하는 일로 소일거리를 삼고 있는 노인이다.

중국에 달인이 많다더만

낙서의 달인을 여기서 만난다.

 

 

능역으로 들어가는

길이 47m, 폭 12mdml 신교.

1651년 건설되었고

중국인민주의공화국이 세워진 이후 다시 재건되었다.

 

 

소릉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석패방.

석패방으로 이어진 가운데 길은 신들이 다니는 길이다.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게 된다.

 

 

석패방의 모습.

 

 

해태

 

 

석패방 안쪽으로는 다시 정홍문.

 

 

정홍문은 세 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는 신이 다니는 신문(神門)이고

오른쪽은 임금이 다니는 군문(君門),

왼쪽은 신하들이 다니는 신문( 臣門)으로 구별된다.

 

 

신공성덕비정으로 이어지는 길 역시

세개의 길이다.

 

 

신공성덕비정의 비석.

청 태종 사망후 45년이 흐른 1688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청 태종의 일대기를 한자와 만주어로 새겨졌다.

 

 

융은문.

능역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문이다.

 

 

융은전과 서배전, 동배전

 

 

융은전

 

 

바닥의 용 무늬

 

 

발가락은 다섯개.

원나라 때부터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황실은 다섯개, 제후는 네개, 재상은 3개의 발가락을 무늬로 사용했다고 한다.

 

 

해태는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머리가 맨들맨들하다.

 

 

청태종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곳.

 

 

그리고 드디어 청태종의 무덤이다.

황제의 무덤을 두른 보성과 봉분인 보정의 모습.

보정은 석회, 모래, 황토를 섞어만들어서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의 매장 풍습이라 들었다.

 

 

서릉의 명루.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덤이 이 정도니

살아서는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녹아없어질 살과 뼈를 가지고

권력은 또 그렇게 승계되어 갈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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