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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오백 당오백(폐사지)

귀덕리 역사유적

by 산드륵 202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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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덕리를 찾았다.

귀덕리 옥터를 찾았는데 생각지도 않은 성과가 있었다.

 

 

회원들과 답사를 나와야 할 지역으로 판단하고 1차 현장답사를 끝냈다.

 

 

옥터의 기와편들

 

 

자기편들도 상당수가 흩어져 있다. 그러나 모기떼가 너무 많아 입으로도 들어간다. 감옥터에서 모기고문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쉬웠지만 서둘러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귀덕1리 포구를 찾았다. 복덕개에서 모슬개까지 영등할망신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복덕개에는 영등좌수가 들어와 있다.

 

 

영등며느리

어질고 반듯하여 바당밭에 전복 소라 미역 천초 등 해초의 씨를 뿌려주는 잠녀의 수호신이다.

 

 

큰이물

 

 

큰여와 작은여

 

 

영등호장

 

 

영등호장은 성깔없고 무게 없어서 헛영등이라 불리는데, 영등호장은 날이 덥다고 사람보다 먼저 얇은 옷을 걸치고 온다. 영등호장이 들면 여름도 빨리 온다.

 

 

복덕개 포구는 천연자원으로 된 복어형태의 형국으로 예부터 복덕개라 불렸으며, 귀덕리에 처음으로 생긴 포구로 큰개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루 새벽 들물 때에 들어왔으며 귀덕 앞바다의 풍각녀, 가막녀, 물에 잠긴녀에 많은 씨 종자를 뿌렸다. 영등할망이 들어올 시각에는 어부들은 바다에 출항을 금지하고 잠녀들도 바당에 나가지 않았다. 영등할망은 복덕개로 들어오면 어민, 해녀들은 복덕개포구 서쪽 돈지빌레어서 영등용왕제도 지냈다. 음력 2월 초하룻날에 들어왔다가 남풍이 불면 우도로 간다고 전해지고 있다.

 

 

모살개

 

 

안캐, 중캐, 밖캐와 같은 3판 구조의 전통적인 제주포구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곳 모슬개에서 복덕개 사이에 영등신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복덕개쪽에서 걸어도 되고 모슬개쪽에서 걸어도 된다. 궤물수덕에서 모슬개와 복덕개를 거쳐 청호사에 참배할 수도 있고, 청호사에서 복덕개를 거쳐 모슬개로 빠져나와 궤물수덕으로 향해도 된다.

 

 

영등우장

영등우장이 들어오면 비가 많이 온다.

 

 

귀덕본향당.

해모살당이라고도 한다.

 

 

본향당 앞의 되물. 되처럼 생겨서 되물이다.

 

 

영등할망딸.

영등할망딸은 언강이 좋아 영등할망도 바람을 빨리 거두고 떠나니 봄이 빨리 온다.

 

 

영등신화공원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바람주머니에 오곡의 씨앗과 꽃씨를 넣어준다.

 

 

영등할망

음력 2월 1일에 들어왔다가 음력 2월 15일에 나간다. 봄을 만들기 위해 1만팔천 바람을 뿌리는데 떠날 때는 모두 거둬간다.

 

 

영등대왕

외톨박이 나라의 왕으로 영등할망이 제주의 봄을 만드는 동안 영등나라의 긴 겨울을 지킨다.

 

 

궤물수덕동산의 영등좌수

한라산에 꽃을 피우는 꽃성인이며 새경너븐드르에 곡식을 파종하는 곡물신이다.

 

 

장마철이라 궤물수덕 앞에 물이 많이 고였다.

 

 

궤물수덕 앞에서 바닷가로 내려서면 궤물이 보인다.

 

 

궤물수덕에서 귀덕1리 마을로 올라와 미륵동산을 찾았다. 귀덕리사지2로 몇년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혜성아파트와 관련하여 자세한 조사가 필요한 지역이다.

 

 

귀덕리 늬커리사지로 들어가는 길에 들러본 태평관 옛터.

 

 

1949년 군경토벌대는 지서가 없는 지역에 경찰관 출장소를 세웠다고 한다. 귀덕리에서도 경찰관출장소를 세워 토벌에 나섰는데 당시 출장소에는 주임(태민규)과 차석 등은 이북출신들이었고, 주민들은 이들로 인해 큰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당시 경찰주임 태민규는 경찰관출장소 앞에 망루를 세웠는데 이 망루는 4.3이 끝나자 주민들에 의해 해체되었다고 한다.

 

 

제주 4.3유적지로 등록된 태평정의 위치는 귀덕리 1187번지이다. 지역주민들도 이 집 앞에 태평정이 있었으나 도로로 편입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현재 지정된 태평정 바로 뒷쪽 옛 우체국 자리가 경찰관출장소 자리이다. 경찰관출장소와 태평정에 대한 안내문이이라도 세워놨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본격적으로 귀덕리 늬커리 답사에 나섰다. 귀덕리사지1이다.

 

 

이곳도 몇년전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1차 답사 때 발견했던 명문기와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뒷사람을 위해 남겨둔 것인데 뒷사람들은 그냥 가져가 버리니 아쉬움이 크다.

 

 

귀덕리사지1에서 곧바로 남승절왓을 찾았다.

 

 

남승절왓과 귀덕리사지1은 200여미터 정도된다. 동일한 구역 안에 있었다고 보아진다. 남승절왓에서 '원당(元堂)'은 어디인지 찾아야 하는 또다른 숙제를 안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 '원당(元堂)'이 맞는지 참말로 궁금하다.

 

 

승짓물터

 

 

승짓물을 기점으로 귀덕리사지1과 남승절왓은 약 200여미터 구역 안에 있다. 남승절왓은 늬커리 대사찰 안의 암자일 가능성을 점쳐본다.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승짓물의 절터. 아직 발굴조사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귀덕리 늬커리사지의 비밀이 이제 풀릴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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