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佛家思議

경산 원효암

산드륵 2025. 8. 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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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은 원효, 설총, 일연 등 성현을 배출하여 삼성현三聖賢의 고장으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오늘 찾은 곳은 경북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의 원효암이다. 원효암은 ‘ㅁ’자형 산지가람山地伽藍으로 극락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요사채가 자리잡고 있다.

 

경산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 원효의 길. 원효암에서 갓바위로 갈 수도 있고, 원효암 뒷산을 넘어서 은해사에 다다를 수도 있다.

 

 

원효암의 사자루. 원효암의 일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면 3칸의 구조물이다.

 

 

원효암은 668년 신라 문무왕 8년에 원효대에 의해 창건되었다. 1882년 고종 19년 긍월대사가 홍주암紅珠庵을 중창할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1980년에 대웅전과 삼성각을 조성하였으나 1986년에 팔공산 산불로 인하여 소실되었고 1988년 허운스님이 극락전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사찰 뒤에 사시사철 찬물이 나는 샘이 있어 일명 '냉천사冷泉寺'로 불렸다고도 한다. 암자 뒤편 암벽에는 신라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1.34m의 마애불 좌상이 조성되어 있다.

 

 

극락전의 삼존불

 

 

극락전에 함께 모셔져 있는 원효대사 진영.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원효대사는 그 어머니가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중, 경주로 가는 길목인 밤나무골 불땅고개 길목에서 태어났다. 그 길목은 지금의 경산시 압량면 버들지다. 원효대사 출생 며칠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또 원효의 부친 설이금은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과 함께 고구려 낭비성 전투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원효의 나이 12세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원효는 자신이 살던 집에 ‘초개사初開寺’를 짓고, 또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곳에는 ‘사라사’를 지어 모든 집착을 회향한 뒤 입산하였다. 그리고 그의 나이 34세가 되던 해에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떠났으나 요동에서 고구려 국경수비대에 붙잡혀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인도 불교가 직접 수입된 당나라 불교의 현황을 보고 싶었던 원효는 45세 되는 해에 다시 당나라 유학에 나섰다. 원효와 의상은 당항성으로 가다가 어둔 밤에 큰 비를 만나 무덤 옆 움막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이틀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첫째날은 비를 피할 수 있었던 그곳이 무척 고마웠으나 둘째날은 해골물을 마신 것처럼 불안과 공포가 덮쳐왔다. 그때 원효는 깨달았다.

 

 

心生卽 種種法生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분별이 일어나고

心滅卽 龕墳不二 마음이 멸하면 땅막과 무덤도 둘이 아니다

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는 오직 마음이 일어남이요, 만가지 생각도 오직 식識의 작용일 뿐이니

心外無法 胡用別求 마음 그것 말고는 분별이랄 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겠는가

 

 

당나라에 가서 구하고 싶었던 것을 여기서 얻는 원효는 발길을 돌려 경주 분황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686년 신라 신문왕 6년 경주 혈사穴寺에서 입적하기까지 99부 24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으나, 현재는 20부 22권 정도만이 전해진다.

 

 

원효대사가 한국불교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면서도 또한 가장 친숙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의 방대하고도 수승한 경지 때문만은 아니다. 원효대사는 말년에 분황사를 떠나 신라 백성들이 사는 저잣거리로 들어갔다.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며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심一心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해도 성불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무릇 모든 부처님들이 열반의 궁전에 장엄하게 자리하신 것은 억겁의 바다에서 욕심을 버리고 고행하신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이 불타는 집의 문 안에서 윤회를 거듭하는 것은 무량한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로막는 자 없는 천당이건만 가서 이르는 자가 적은 까닭은 삼독과 번뇌로서 자기 집의 재물을 삼은 때문이며 유혹하는 자 없는 지옥이건만 가서 들어서는 자가 많은 까닭은 네 마리의 뱀과 다섯 가지 욕심으로 망녕스리 마음의 보물을 삼은 때문이다. 사람 가운데 그 어느 누가 산으로 돌아가 도 닦고자 아니 하겠는가마는 그렇게 나아가지 않은 까닭은 애욕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깊은 산으로 들어가 마음을 닦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힘에 따라 착한 것을 행하는 일은 버리지 마라. 스스로 쾌락을 능히 버릴 수 있으면 성인과 같이 믿음과 공경을 받을 것이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할 수 있으면 부처님처럼 존중 받을 것이다.

 

재물을 아끼고 탐하는 자는 바로 마귀의 권속이며, 자비를 베푸는 자는 바로 법왕의 자식이다. 높은 산의 험준한 바위는 지혜로운 사람이 거처하는 곳이고 푸른 소나무의 깊은 계곡은 수행하는 자가 머무는 곳이니, 배고프면 나무 열매를 먹어 주린 창자를 달래고 목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갈증나는 마음을 쉬게 할 것이다. 좋은 음식과 사랑으로 이 몸을 기를지라도 반드시 허물어질 것이며 부드러운 옷을 입어 지키고 보호하더라도 이 목숨은 필연코 마침이 있을 것이다. 메아리가 울리는 바위굴을 염불하는 불당으로 여기고 애처로이 우는 기러기 소리를 기쁜 마음의 벗으로 삼으라. 절하는 무릎이 얼음같이 시리더라도 불기운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주린 창자가 마치 끊어지듯 하더라도 음식을 구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1백년도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않는다 말할 것이며 한 평생이 얼마나 되관데 수행하지 않고 놀기만 할 것인가? 마음 속에 애욕을 떨쳐버린 이를 이름하여 사문이라 하고,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출가라 한다. 수행하는 자가 비단을 걸친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덮어 쓴 격이며, 도를 닦는 이가 애욕을 품는 것은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간 격이다. 재주와 지혜가 있으나 세속의 마을에 거처하는 자는 모든 부처님이 그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설령 도를 닦는 수행이 없더라도 산 속의 처소에 거주하는 자는 뭇 성인들이 그 사람으로 인해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비록 재주와 학문이 있더라도 계행이 없는 자는 마치 보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도 일어나 가지 않는 것과 같으며 부지런히 수행하더라도 지혜가 없는 자는 동쪽 방향으로 가고자 하면서 서쪽을 향해 나가는 것과 같다.

 

지혜가 있는 사람의 수행은 쌀로 밥을 짓는 것과 같으며 지혜가 없는 사람의 수행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모두들 밥을 먹어 주린 창자를 위로할 줄은 알면서도 불법을 깨우쳐 어리석은 마음을 고칠 줄은 모르는가.

 

수행과 지혜를 모두 갖추는 것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으며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나아가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것은 마치 새의 양쪽 날개와 같다.

 

시주를 받고 축원하면서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역시 단월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밥을 얻고서 찬불을 하면서도 그 이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역시 성현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똥벌레가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분별하지 못함을 싫어하듯이, 성현께서는 사문들이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분별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것이다. 세간의 시끄러움을 버리고 천상으로 오르는 데는 계행이 가장 훌륭한 사다리이다. 그러므로 계행을 깨트린 이가 남을 위하는 복밭이 되려는 것은 마치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을 업고 하늘로 오르려는 것과 같으니 스스로 죄업을 벗지 못한 이는 다른이의 죄업을 풀어 줄 수 없다. 그러니 계행이 없는 이가 어찌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을 수 있겠는가.

 

행함 없는 빈 몸은 기를지라도 이익이 없으며, 항상성이 없는 뜬 목숨은 사랑하고 아끼더라도 보존하지 못한다. 용상의 큰 덕을 가지기 바라거든 기나긴 고통을 능히 참아야 하며, 사자의 자리에 오르기 기대하거든 욕망과 쾌락을 영원히 등져야 한다. 수행하는 자로서 마음이 깨끗하면 모든 천신이 함께 찬양할 것이며 도를 닦는 이로서 여색에 인연하면 착한 신이 버리고 떠날 것이다. 사대는 홀연히 흩어지니 보존하여 오랫동안 머물지 못할 것이며 오늘 저녁이 될지도 모르니 아침부터 서둘러 행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쾌락은 고통이 뒤따르니 어찌 탐내어 붙을 것이며, 한 번 참으면 길이 즐거울 것이니 어찌 수행하지 않겠는가.

 

도를 닦는 사람의 탐욕은 수행인의 수치이며 출가한 이의 부귀는 군자의 웃음거리이다. 핑계로 하는 말은 다하지 못하기에 탐욕의 집착은 그칠 줄 모르며, 이어지는 일은 끝남이 없기에 끊임없이 애착을 가지게 된다. 이 일로써 한정을 지을 수 없기에 세상의 일을 버리지 못하며, 저 계책으로 시기를 그을 수 없기에 끊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도 세상과의 인연을 다하지 못하기에 악업을 짓는 날짜가 많아지게 되고, 내일 또한 다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선업을 지을 날짜는 적어지게 된다. 올 해에 다하지 못하니 번뇌는 한이 없고, 내년에도 다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깨달음에 나가지 못한다.

 

한 시간 한 시간 옮겨가니 하루는 어둠으로 신속히 지나가고, 하루하루 옮겨가니 한 달은 그믐으로 신속히 지나가며 한 달 한 달 옮겨가니 홀연히 연말에 이르고, 한 해 한 해 옮겨가니 잠시간에 죽음의 문에 도달한다. 부서진 수레는 구르지 못하듯이 늙은 사람은 수행할 수 없으니, 누우면 게으름과 나태만 생기며 앉아 있으면 난잡한 의식만 일어난다. 몇 생을 수행하지 않고서 헛되이 밤낮을 보냈으며, 이 빈 몸은 얼마를 살 것이관데 한 평생 수행하지 않는가? 몸은 반드시 끝마침이 있으니 내생에는 어찌할 것인가? 다급하고도 다급한 일이 어찌 아니겠는가!

 

 

절도 좋고 물도 좋고 공양주 보살님도 친절하시고 모두가 원효를 닮았다.

 

 

산신각

 

 

200여미터를 더 올라가면 원효암 마애여래좌상을 친견할 수 있다.

 

 

연화대 위에 결가부좌하신 마애여래좌상. 배 모양의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돋을 새김한 여래좌상을 모셨다. 가까이 가서 보면 광배도 선명히 표현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마애여래좌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감실높이 158㎝, 아래 폭 170㎝, 연화대 폭 128㎝, 높이 22㎝, 좌불 높이 110㎝이다.

 

 

2025년 여름에 만난 원효암. 새벽스님이 걷던 길에서 다시 한번 『발심수행장』의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마치 새가 두 날개로 나는 것처럼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나아가 다른 이를 이롭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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