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와 3

정방 4·3 위령 공간

산드륵 2026. 6. 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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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동홍동 서복전시관 내에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이 있다. 이 위령공간에서 바다를 향해 걸어가면 곧장 정방폭포이다. 정방폭포와 정방폭포 주변 검은여, 자구리해안, 소남머리 등 이 일대는 제주 4·3 당시 서귀면, 중문면, 대정, 남원, 안덕, 표선 등에서 이송 되어온 산남지역 일대 거주 민간인들의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다. 제주 4·3 당시 이 일대에는 군토벌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수거해온 희생자들은 전분공장과 단추공장 등 크다고 소문난 여기저기 창고에 수감되어 있다가 군토벌대에 의해 즉결처형되어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사이 해안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바다로 흘러갔다.

 

 

4·3의 문을 열면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당시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2월 사이에 정방폭포 일대에서 희생된 민간인은 서귀면 112명, 안덕면 55명, 중문면 42명, 남원면 32명, 대정면 12명, 표선면 2명 등 255명에 달한다.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사이 자구내 해안을 포함한 이 일대는 서귀리의 중심지역으로 면사무소, 남제주군청, 서귀포 경찰서 등이 소재하고 있었다. 제주4·3이 발발하자 서귀면사무소에는 토벌대의 주요 거점인 대대본부가 설치되었다. 이로 인해 군부대로 끌려와 취조당한 이들이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등 해안절벽으로 끌려가 희생된 것이다.

 

 

그 날 탄피는 바다로 흘러갔고 총소리는 허공에 흩뿌려졌으나 희생자와 유족들은 멈춰버린 시간에 갇혀 오래도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 시간은 멈춘 채 또 흘렀고 이승만 정권의 학살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도 이루어졌지만 오래도록 위령의 공간은 마련할 수 없었다. 일부주민과 일부 상인들의 반대로 결국 자리를 마련한 곳이 이곳 서복전시관 내부의 한켠이다.

 

 

서복전시관의 노란 담장 너머 저편에 정방폭포 등의 해안절벽이 버티고 있다.

 

 

때마다 피어나는 수련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더냐. 그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떠나도 때마다 꽃을 피워 공양을 올린다.

 

 

4·3 당시 희생자들이 수용되었던 단추공장(서귀동 674-1), 고구마창고(서귀동 738-1), 농회창고(서귀동 556-2) , 절간고구마창고(서귀동 587-3), 새섬민간인 수용소 등에는 여전히 가슴 먹먹한 바람이 총알 맞은 나뭇잎 사이로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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