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967 현의합장묘의 정월의 신부 어느 때부터인가 꽃을 꺾지 않게 되었다. 똑 하고 꽃의 목을 꺾는내 손의 무정함에 스스로 질려서였다. 또다른 이유로 꽃을 꺾지 못하는 사람...1948년 정월의 아리따웠던 신부 마을을 불태우며 돌아다니던 토벌대에게 1948년 그해 정월의 신부는 신랑을 잃었다. 그리고 산속에 숨어 옹달샘을 떠 먹고 울음을 집어 삼킬 때 총알을 피해 돌아누웠던 그 뱃속의 아기가 올해 59세. 무정한 세월이었다. 남원읍 의귀초등학교 이곳이었다. 1948년 4.3 당시 국방경비대 2연대 1대대 2중대 군인들이 주둔하여 남원읍 일대 의귀, 한남, 수망 등 중산간 주민들을 토벌하던 전초기지. 48년 11월 7일 다른 마을보다 일찍 시작된 토벌작전에서 끝내 의귀리 300명, 수망리 100명, 한남리 100여명 등의 사람이 희생되었다.. 2008. 2. 29. 영남마을 한원스님 한원 스님 이야기 잃었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큰 이야기 꽃방석 펴놓고함께 듣습니다. 서귀포시 영남동 1948년 11월 28일 국방경비대에 의해 전소되어 사라진 마을 천백도로와 제2산록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제2 산록도로를 따라 서귀포 방면으로 달리다가 아르도 서귀포 펜션 신축공사현장이라 써 있는 표지판을 따라 오른편으로 난 시멘트 길을 200여 미터 달리면 눈 앞에 환하게 펼쳐지는 영남 마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주 4.3이 끝나고 난 후 홀로 이 고요한 마을을 지키던 전씨 할아버지가 최근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나서 요즘 이 영남마을의 아침과 저녁을 매일 마주하는 이들은 전씨 할아버지 막내아들 내외와 4년전 이곳에 터를 마련하신 무주선원의 한원 스님이 전부입니다. 한원스님은 말씀하십니다... 2008. 2. 29. 혼인지와 황루알 마을마다 정겨운 전설을 아니 품은 곳이 없는 제주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 지방 기념물 제 17호로 지정된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 혼인지는 고. 량. 부 3 신인이 벽량국의 3공주를 맞이하여 혼례를 치룰 때 목욕재계한 연못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벽랑국 3공주를 기리는 비입니다. 너비 약 50미터에 면적 .. 2008. 2. 29. 곽지리 폐사지 산책길의 고운 인연들아! 오늘은 한때 님들만큼 고왔을 할머니 말씀 한 번 듣고 가십시오. 올해 85세 태어나서 이 나이가 되도록 한번도 이곳 애월읍 곽지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곽지리 폐사지를 찾아나섰다가 폐사지만큼이나 다정한 말씀 마음에 품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2008. 2. 29. 보우대사 순교 추정지, 어도봉 허깨비로 와서 오십 여년 온갖 미친 짓 모든 영욕 다 겪고 이제 그 탈을 벗는다 보우대사의 열반송입니다. 1565년 문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해 6월 제주로 유배 되어 목사 변협에게 장살되기까지 보우대사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시간은 아주 짧았습니다. 그 보우대사를 기리며 제주의 향토사가인 김.. 2008. 2. 29. 종낭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가없이 슬프기도 한 일입니다. 그런 인연의 일... 하지만 모진 인연 속에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행복은 모두 그대 드리고 슬픔은 모두 제가 갖고 싶습니다. 조천읍 와산리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 종낭밭으로 가는 길 와산리 본동에서 선인동 방향으로 꺾은 후 200여미터를 달리면 길 오른 편 축사 옆으로조그만 시멘트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끝까지 달리면 밀양 박씨 가족 묘원이 나옵니다. 묘원 뒷쪽 삼나무 숲 속이 잃어버린 마을 종낭 마을 일대입니다. 이곳은 1948년 11월 20일 국방경비대 제9연대에 의해 소각된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당시의 마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12가호에 60여명이 모여 살던 마을 입구에는 아낙들이 두레박을 .. 2008. 2. 29. 이전 1 ··· 142 143 144 145 146 147 148 ··· 1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