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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사찰112

남국선원 덕생이 오름의 남국선원. 1977년 혜국스님에 의해 창건되었고 현재는 성묵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신 참선수행도량으로 이곳의 무문관은 널리 알려진 수행처이다. 조그만 인법당으로 출발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과 함께 흘러 흘러 흐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따뜻한 차를 기다리는 어린 손님도 묵언중. 그 묵언 수행의 터에 오늘은 고운 등이 내걸렸다.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불자들. 붓다를 향한다. 설법 중인 성묵스님. 오늘의 설법은 가난한 이가 올린 등불 이야기이다. 인도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는 석가세존께 올린 수많은 등불들은 밤이 지나 새벽이 찾아오면서 하나둘씩 꺼져가기 시작했다. 왕의 등불도, 부자들의 등불도 어김없이 하나둘씩 꺼져갔다. 새벽이 지나 아침이 오자 석가세존께서는 목건련존자를 시켜.. 2015. 5. 25.
금붕사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금붕사. 금붕사의 나유타 합창단 단원들이 꽃처럼 곱게 단장하고 초파일 나들이에 나선 이들을 맞아주고 있다. 카메라를 향해 아무 거리낌없이 웃어주는 그 따뜻한 마음에 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초파일이라 뜰로 나온 달마. 난타공연, 판소리 공연, 합창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려 완전히 잔치집 분위기 그대로이다. 조용했던 산사를 뒤흔드는 시원한 우리 가락. 사찰마다 펼쳐지는 색다른 풍경에 초파일 순례길이 흥겹다. 나유타 합창단의 공연. 천막 안에 빼곡하게 자리잡은 청중들. 곱게 한복으로 단장한 할머니들과 아침 일찍 고사리를 꺾고 부리나케 달려왔다는 아주머니들과 중절모를 눌러쓴 할아버지와 풍선을 들고 달리는 어린아이까지 모두 오늘 하루 흥겹다. 서원의 등불 아래서 평화롭다. 금붕사 대웅전.. 2015. 5. 25.
고관사 제주시 조천리의 고관사 이곳이 '옛 관음사', 즉 '고관사'라 불리는 연유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 등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관음사는 조천 포구 위에 있다라고 하여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존속하던 이 지역의 사찰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데 문헌 속의 조천 관음사는 지금의 터가 아닌 조천 포구에 있었던 '정중당물' 동쪽 지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정중당물도 그곳의 사찰터도 지금은 모두 매립되거나 변형되어 사라졌고 조천 관음사의 명맥을 이은 이곳 고관사만 제주 4.3 등 격동의 역사를 겪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고관사는 1927년 화주 고계부, 강정완 등이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 제주포교소로 창건하였으나 제주 4.3 당시 사찰을 강제로 매각당하여 조.. 2015. 5. 25.
관음사 목조관세음보살 친견 한라산 관음사 영산대재가 열리는 날이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하여 6시까지 진행된다는데 산길은 일찍부터 분주해 보였다. 눈을 뜨고 나서 어디로갈까 하다가 무작정 들어선 관음사 어느새 이곳에도 세월이 내려앉아 있었구나. 이끼옷을 입고 미소짓는 부처님 오랫만에 찾았다. 전에 없던 안봉려관 스님의 모습이 보인다. 안봉려관 스님을 뵙게되자 김석윤스님도 찾게 된다. 그러나 관음사 창건의 핵심인물인 김석윤스님의 모습은 일제의 의해 지워진 후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제주의병을 이끌었던 의병장 김석윤스님도 어서 이곳 관음사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해월굴 안봉려관 스님이 수행정진하던 곳 안봉려관스님은 근대 제주 불교를 부흥시킨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곧 영산대재가 열릴 관음사 풍경 대웅전 석가여래와 관.. 2014. 9. 28.
자성원 어떤 이가 머물다 갔느냐에 따라 그곳의 향기도 달라진다. 청화 스님께서 머물던 자성원에서 늘상 하던 생각. 그러나 오늘은 그 생각 위에 먼지가 묻어 있었음을 알았다. 그 향기조차 내가 지어낸 티끌임을 알았다. 청화스님! 가신 뒤의 법문이 더 크군요. _()_ 1988년 5월 23일 초파일에 있었던 청화스님의 법문이다. 안심입명을 하려고 생각할 때는 마땅히 일체 존재를 관통해 하나의 불성으로 보아야 하고 또한 불성이 되기 위해서 거기 걸맞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합리적인 방법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석가모니는 성을 넘어서 왕자의 자리를 그만두고 출가를 했고 출가한 뒤에도 그냥 안일한 차원이 아니라 가장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석가모니 같이 빈궁하고 가장 청빈한 생활을 한 그런 수행자는 없습니.. 2014. 5. 6.
용주사 산록도로를 타고 제주시 방향으로 넘어가다가 상효원 인근의 용주사에서 멈췄다. 조그만 암자였던 이곳이 중축 불사를 통해 거듭난 것은 최근의 일 법당을 중심으로 석굴과 요사채가 자리잡고 있다. 용주사 석굴 산신 기도처로 찾던 곳이 아니었나 미루어 짐작해 본다. 도량을 둘러싼 석벽의 모습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두골이라 불리기도 한다는데 사명이 용주사인 것도 그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석굴과 법당 사이의 관음보살 감로의 법비가 절실한 요즘이다. 법당 내부의 모습.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봉안하고 그 뒤로 사천왕, 산신, 용왕, 지장보살 등을 모셔놓았다. 법당 전면에 봉안된 석가모니불과 협시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 본존불 뒤쪽의 모습 각각의 전각을 조성하지 않고 원형의 벽을 따라 참배할 수 있도록 구.. 201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