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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와 350

다랑쉬굴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1948년 10여 가호에 4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던 이 깊은 곶자왈 속 다랑쉬 마을에도 소개령이라는 것이 떨어졌다. 이 다랑쉬 마을 사람들은 해안으로 피신하여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삶의 기반을 잃고 다시는 마을을 재건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오래도록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이곳에서 군경토벌대에 의해 학살된 인근 주민 11명의 유골이 발견된 것은 1992년 3월. 그 다랑쉬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았다. 다행히도 다랑쉬굴로 가는 길은 찾기 좋게 걷기 좋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지금과 같은 길이 없었을 때는 다랑쉬굴을 찾아 가는 길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낫으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억새를 비어가면서 뱀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다랑쉬굴로 가는 길을 내었었.. 2016. 3. 20.
4·3 미술 대표작품선 전 - 초대, 다시보는 4월 2015년. 겨울이 가면 봄이 와야할 터인데 제주에서는 겨울이 가면 4·3이 다가온다. 4·3 평화기념관 예술 전시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4·3 미술 대표작품선 전 - 초대, 다시보는 4월' 전시회에 다녀왔다. 오석훈 작가의 '어머니의 4.3-지금까지 살아진 것이 용한 거라' 사진 속 40대의 어머니는 저 나이 때에도 홀로 되뇌이며 살았다. '지금까지 살아진 것이 용한 거라' 4·3 당시 16살이었던 소녀의 집으로 국군토벌대들이 들어왔다. 소녀는 '눌' 속에 숨었다. 국군토벌대는 소녀의 홀어머니가 딸의 혼수감으로 마련해 두었던 솜이불과 소 한마리를 끌고 가다가 총끝의 칼로 '눌'을 꾹꾹 눌렀다. 소녀는 곧바로 국군토벌대에게 붙들렸고 마을 공회당에 감금되었다. 공회당 안에는 마을 청년들과 소년 소녀들이 붙.. 2015. 3. 29.
섯알오름 학살터와 고사포 진지 절울이 알오름에서 섯알오름으로 이어진 길 바람에 이리저리 찔레 향기 날아오르는 길 듬성듬성 꽃향기 풍경 고운 이곳에 그러나 숨어있는 화약냄새 일제 고사포 진지 이 고사포 진지는 일제가 태평양 전쟁 당시 제주를 군사 기지화 하면서 인근의 알뜨르 비행장을 수호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 시설이다. 모두 5기의 진지가 있는데 4기는 완성되고 1기는 미완성 형태로 남아있다. 직경 10m 깊이 1.5m 크기로 둥그런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이곳에서도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일제에 징용되어 노역을 해야했다. 풍경은 곱다. 노래는 슬프다. 돌아보니 모슬봉의 미군 군사 기지는 여기서도 선명하다. 콘트리트 사이에서 피어난 들꽃.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안타까운 영령들 때문에 들꽃만 바라봐도 눈물이 나는데 더구나 안산의 한 연립주택 .. 2014. 5. 11.
삼밭구석 잃어버린 마을 동백처럼 져버린 마을 통곡의 소리로 슬픔을 새겨놓았다는 이 마을의 사연은 도대체 얼마마한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마을 입구의 퐁낭이 말해주듯 300년도 훨씬 전에 설촌되어 50여 가구 150명의 주민들이 목축을 생업으로 하고 살고 있었던 곳 그러나 1948년 국군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마을의 모든 가옥은 불 타 사라지고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학살되고 남은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갔다. 올래 돌담의 송악. 대나무를 잘라 구멍을 뚫고 송악을 넣어 누가 멀리 쏘아대나 내기하던 옛 이야기도 이곳에서는 더 이상 전하지 않는다. 수없이 봄꽃이 피고지며 그날을 말하고 싶어 하는데 그때는 그랬어야 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해도 되는 걸까. 그날의 그 피를 손에 묻힌 이들. 그들의 건재함에 피빛이 더욱.. 2014. 3. 24.
큰넓게 다시 4.3이다. 영화 '지슬'의 영향인가. 큰넓궤로 가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 그 덕에 가시덤불에 찢기며 곶자왈을 헤매지 않아도 접근이 가능하다. 안덕면 동광리 산 90번지 곶자왈의 큰넓궤 1948년 11월 중순 이승만의 국군 토벌대에 의해 중산간 마을들이 화염에 휩쓸려 잿더미로 변해갈 당시 야산에 흩어져 목숨을 숨겼던 동광리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은신하던 곳 겅해도 살아보잰 도망온 이들을 따숩게 그렇게 안아 주었던 큰넓궤 옛 제주 사람들에게 궤는 생존의 마지막 끈이 다할 때면 저절로 발길이 옮겨지는 그런 곳이었나 보다. 몸을 가린 것은 갈중이 하나뿐이어서 오돌오돌 떠는 손녀를 달리 어쩔 수 없었는데 덤불에 찢기며 들판을 떠돌때 한라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마을사람 12.. 2014. 3. 23.
성산포 터진목 성산포의 터진목 1940년대 초까지도 물때에 따라 육지길이 열리고 닫혔던 이곳 터진목. 광치기여 앞 모래사장 이 일대는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성산면, 구좌면, 남원면의 주민들이 인근 지서에 끌려갔다가, 혹은 군인들에게 잡혔다가 이승만의 사병이었던 서북청년단 특별중대에 넘겨진 후 감자공장 창고에 수감되어 고문 당하다가 총살됐던 학살터. 풍경은 무심히 고와 마음이 더 저려오는 이곳. 이방인이 타전하는 성산포의 소식 그해, 이 터진목 해안 모래밭 앞 절 소리는 이른 봄부터 그렇게 거칠도록 울더이다. 그해 가을, 이 터진목 앞바르 바닷가 노을은 파랗게 질려 있고 순하디 순한 숨비기나무 잎새들마저 초가을 바닷바람 사이에서 덜덜덜 떨고, 거칠게 밀려오던 파도 또한 덩달아 숨죽이던 그 때의 가을은 어느 .. 2013. 3. 31.